[의료대란 비상]폐업 첫날 문 연 병원

  • 입력 2000년 6월 20일 19시 36분


의사들의 집단 폐업에 상관없이 평소와 다름없이 문을 연 서울 성동구 성수1가 성수의원(원장 양길승·梁吉承)에는 평소보다 많은 환자들이 찾았다.

“의약분업에 찬성합니다. 20일부터 시작되는 파업에 상관없이 진료를 계속합니다”는 내용의 벽보가 1주일 전부터 성수의원에는 붙어 있었기 때문.

성수의원측은 “오늘은 평소 정기적으로 진찰받던 환자가 아닌 새 환자들이 많았다”고 말했다. 평소 40여명 꼴이던 환자가 이날은 60여명으로 절반 가량 는 것. “정말 오늘 정상 진료를 하느냐”는 문의전화도 많았다.

양원장은 이와 관련해 “의사들은 지난해까지 의약분업에 원칙적으로 찬성했다”며 “그러나 이제 와서 많은 의사들이 정부 입장에 반대하게 된 원인은 그동안 정부가 의사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나 양원장은 투쟁방법과 관련해서는 ‘신중론’을 편다. 그는 특히 “오늘날 약물 오남용이 계속되고 있는 데에는 의사들의 개선 노력이 부족했던 이유도 크다”며 “그래서 환자가 의사를 믿을 수 있도록 환자를 돌보며 싸우는 길을 택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날 오전 9시. 서울 동작구 사당의원의 조정현 원장도 여느 때와 다름없이 흰 가운에 청진기를 목에 걸고 환자를 돌보기 시작했다.

“현정부의 의약분업안이 안고 있는 문제점을 누구보다 절실히 느끼고 있지만, 하루도 거르지 않고 열어 온 병원 문을 닫기가….”

조원장은 환자 진료와 의료계의 문제 해결을 동시에 추진하는 방안을 선택하기까지 오랜 시간 고민해야 했다. 조원장은 “폐업 중인 의사들도 사실은 환자를 보고 싶어 할 것”이라며 다른 의사들에 대해서는 극도로 말을 아꼈다. 사당의원은 실제 85년 문을 연 이후 단 하루도 진료를 거른 적이 없다.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의사들이 중심이 된 경기 구리시의 원진녹색병원에도 이날 오전 평소보다 훨씬 많은 200여명의 환자가 몰려들었다.

이 병원의 박찬호 사무국장은 “오전에 우리 병원을 찾은 환자의 90%가 신규환자인 것을 보면 대부분 인근병원이 문을 닫는 바람에 몰렸던 것으로 보인다”면서 “다른 병원의 폐업기간 중 의사 9명이 비상근무체제에 돌입했다”고 ‘임전태세’를 설명했다.

<이원홍·이진영기자>bluesk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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