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속철 불법로비]호씨는 구속 린다金은 불구속 왜?

  • 입력 2000년 5월 10일 01시 33분


알스톰사로부터 로비 사례금 명목으로 거액을 받은 혐의로 구속된 ‘로비스트’ 호기춘씨 사건은 합법적인 로비가 존재하지 않는 우리 사회의 아이러니를 그대로 드러낸다.

박상길(朴相吉)대검기획관은 9일 “호씨와 수배중인 최만석씨에게 로비 사례금조로 1100만달러를 준 알스톰사는 범법의 혐의가 없어서 수사대상이 아니다”고 말했다. “로비해달라”며 돈을 준 쪽은 죄가 없고 로비의 대가를 받은 사람만 처벌을 받는 셈.

호씨와 최씨의 혐의는 ‘한국고속철도차량 공급업체 선정’이라는 공무(公務)에 속한 사항의 알선에 관해 금품을 수수했다는 것(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의 알선수재).

호씨는 검찰에서 “알스톰사와 에이전트 계약을 맺고 국제 관례에 따라 수주금액의 1%를 대가로 받은 것일 뿐”이라고 주장한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은 이에 대해 “적법한 서비스의 대가라면 정식으로 에이전트 사무실을 열고 발생한 소득에 대한 신고도 해야 했을 것”이라며 “비공식적이고 은밀한 로비를 벌인 이유와 과정이 수사의 초점”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아직까지 호씨나 최씨가 정 관계 인사에게 뇌물을 줬다는 증거는 발견되지 않았다.

‘고속전철사업’과 ‘백두사업’의 공식 로비스트였던 강귀희씨와 ‘린다 김’이 로비의 대가로 사례금(에이전트 피)을 받고도 호씨처럼 처벌되지 않는 것은 ‘공식’이라는 형식을 갖췄기 때문이라는 것이 검찰관계자의 설명이다.

그러나 호씨의 변호인은 “로비가 법적으로 인정되지 않아 모든 로비가 불법이어서 로비스트와 ‘브로커’의 구분이 없는 우리 현실에서 로비스트가 ‘공식’이냐 ‘비공식’이냐가 무슨 의미가 있느냐”고 반문했다. 한국에서는 ‘로비스트’라는 직업으로는 소득 신고를 하고 세금을 낼 길이 없다는 것.

일부 정치권과 시민단체에서는 “이같은 로비의혹 사건들을 교훈 삼아 우리나라도 미국 등 선진국처럼 로비를 합법화하고 그 대신 로비스트의 자격기준과 활동범위를 엄격히 규정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미국의 경우 미 의회에 등록된 로비스트가 99년말 현재 8134명, 이들을 고용한 고객은 1만2654명에 이르는 데 실제 미국전역에서 활동중인 로비스트는 10만명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한 변호사는 “우리가 ‘로비〓뇌물공여’로 부정적으로 인식한다면 미국은 ‘로비〓국민의 기본권리인 청원권’이라는 적극적 사고가 정착돼 있다”고 말했다.

<부형권기자>bookum90@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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