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동 산불현장/표정]'도깨비불과의 전쟁' 주민들 탈진

  • 입력 2000년 4월 13일 19시 42분


13일 오전 바람이 다소 약해지면서 강원 영동지방의 산불이 잦아들었지만 주민들은 언제 다시 강풍과 함께 불길이 번질지 몰라 여전히 불안에 떨었다.

▼삼척▼

○…오전에는 기세가 꺾였던 산불이 오후 들어 거센 바람과 함께 다시 시가지 인근 야산으로 번져 인근 주민들이 황급히 대피했다.

오후 3시경 남양동 삼일중고등학교와 원조아파트단지 뒷산으로 불길이 옮겨 붙으면서 희뿌연 연기와 매캐한 냄새가 코를 찔렀다. 이날 남양동 일대 야산과 주택가에는 소방헬기 10여대와 소방차들이 출동해 불길의 확산을 막았다.

○…13일 오후 미로면 사둔1리 일대 90여명의 주민들은 마을 뒤 100m 지점의 야산까지 불이 번지자 가구 등 가재도구를 내놓은 채 불안에 떨었다.

김금란(金錦蘭·71·여)씨는 “11일 새벽 산불에 놀라 집에서 뛰쳐나온 채 아직까지 한잠도 못잤다”며 “마을 젊은이들은 오래 전에 떠나 없고 노인들만 남아있어 더욱 무섭다”고 말했다.

진화작업을 하고 있던 의용소방대원 정의천(鄭義天·44·미로면 하노거1리)씨는 “이 마을은 7일부터 지금까지 벌써 3번이나 불길이 죽었다 되살아나고 있다”며 “주민들도 가재도구를 내놓았다가 들여놓기를 반복해 탈진한 상태”라고 말했다.

○…강풍이 불 때마다 불길이 살았다 꺼졌다를 반복하자 주민들은 밤에도 집밖에서 주변의 야산을 쳐다보며 불안에 떨고 있다.

12일 산불이 한번 지나간 미로면 사둔2리 주민 이금옥(李錦玉·59)씨는 “불이 도깨비불처럼 오락가락해 잠시도 집을 비울 수 없는 상황”이라며 “볍씨는 준비해 놓고 있는데 못자리용 비닐하우스가 불타 농사일도 걱정”이라고 한숨지었다.

▼동해▼

○…13일 새벽부터 강풍이 차츰 잦아들면서 주택가 인근 야산의 불이 꺼지자 시민들은 일단 안도하는 분위기.

하지만 시 외곽쪽으로 방향을 튼 불길이 부곡동 삼화동 북평동 일대로 계속 번져나가자 동해시와 군부대측은 공무원 군인 민방위대원 등 5400여명과 헬기 27대, 소방차 45대를 투입해 진화작업을 벌였다.

한편 가옥 21채가 잿더미로 변한 북삼동 분토골, 숫골 등 시 외곽 골짜기에 있는 마을에선 이날 수백명의 주민들이 집 주변 잔불을 끄기도 했다.

○…화재 피해를 보지 않은 주민들은 미리 집 밖으로 내놓았던 가재 도구들을 다시 집안으로 들여 놓느라 분주하게 움직였다.

이상기(李尙基·30·북삼동 분토골)씨는 “집으로 불이 옮아 붙을까 걱정이 돼서 밤새 뜬 눈으로 지새웠다”며 “골짜기 양편에서 치솟는 불기둥을 바라보고 있자니 생지옥이 따로 없었다”며 몸서리를 쳤다.

▼울진▼

○…울진군은 이날 오전 5시50분부터 헬기 36대와 공무원 군인 예비군 등 1만여명을 투입해 북면 검성리와 나곡리, 태봉리 일대에서 산불잡기에 나서 오전 10시반경 큰 불을 잡았다.

이에 따라 부국중학교로 긴급대피했던 산불 지역 주민 355명이 대부분 귀가했으며 원자력발전소 직원 가족들도 다시 원전 아파트로 돌아갔다.

<울진·삼척·동해〓이혜만·경인수·남경현·이명건기자>suhcho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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