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실련 출마부적격 명단공개/파장-쟁점]공정성 논란

  • 입력 2000년 1월 10일 19시 48분


《경실련이 10일 4·13총선과 관련해 나름대로 선정한 공천 부적격 인사 리스트 164명을 공개함에 따라 시민단체의 총선개입에 대한 위법성 논란이 가열되고 있다.

참여연대와 환경운동연합 등이 중심이 돼 12일 발족할 예정인 ‘2000년 총선 시민연대’도 곧 현역의원을 대상으로 한 공천반대 리스트를 발표한 뒤 대대적인 총선개입에 나설 움직임을 보여 이에 따른 논란과 파장이 더욱 커질 것으로 예상된다.

시민단체와 상당수 국민은 이같은 운동이 국민의 대표기관인 국회의원 선출과정에 대한 유권자의 정당한 개입과 심판이라고 주장하고 있는 반면 정치권에서는 명백한 선거법 위반이라며 검찰에 고발할 움직임을 보이고 있어 귀추가 주목된다. 》

▽쟁점〓경실련은 이번 명단공개가 특정후보에 대한 지지나 반대가 아니라 유권자의 판단을 돕기 위한 정보제공일 뿐이라고 주장하고 있으나 특정인의 부정적 측면만 적시하고 있어 객관성에 대한 시비와 함께 찬반논란이 극명하게 엇갈리고 있다.

시민단체의 행위가 선거법에 위반되는지 여부는 선거법이 규정하고 있는 ‘선거운동’의 개념을 어떻게 볼 것이냐에 따라 달라진다. 공직선거 및 선거부정방지법(선거법)은 59조에서 후보자의 등록일(16대 총선의 경우 3월28일) 전까지는 선거운동을 하지 못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그 이전까지의 선거운동은 254조의 사전선거운동으로 처벌받게 된다.

선거법은 58조에서 ‘선거운동’을 ‘당선되게 하거나 되지 못하게 하기 위한 행위’라고 규정하면서 “다만 선거에 단순한 의견의 개진, 의사의 표시 등은 선거운동으로 보지 않는다”고 규정하고 있다.

따라서 시민단체의 행위를 ‘선거운동’으로 볼 것인지, 아니면 ‘선거에 관한 의사표시’로 볼 것인지에 따라 위법 여부가 달라진다고 할 수 있다.

단체의 선거운동을 금지한 선거법 87조도 논란이 되고 있으나 이 문제는 선거운동의 개념이 명확히 가려진 뒤에 다시 거론될 문제다. 공천감시운동 등이 선거운동에 해당하지 않는다면 단체의 ‘선거운동’금지가 문제될 소지가 없기 때문이다.

▽시민단체 입장〓시민단체는 정치권의 선거법 위반 주장을 ‘난센스’라고 일축하고 있다. 경실련은 “공천부적격자 명단발표는 특정후보자를 지지 또는 반대하는 것이 아니다”며 “언론 등에 이미 보도된 것을 국민에게 있는 그대로 알려 올바른 주권행사를 돕는 것이므로 헌법정신에도 부합한다”고 주장했다.

‘총선연대’의 양세진(楊世鎭)공동사무국장도 “경실련의 공개 내용은 유권자들이 반드시 알아야 할 출마예상자들에 대한 정보에 해당하기 때문에 국민주권의 원리를 지키고 국민의 알권리를 충족시키는 것으로서 결코 불법이 될 수 없다”고 말했다.

시민단체들은 ‘조직적인 낙선운동’에 대해서는 아직 명확한 입장을 나타내지 않고 있다. 참여연대 관계자는 “부적격 후보자에 대한 낙선운동을 구체적으로 어떻게 할지는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며 “낙선운동의 구체적인 내용에 따라 합법 여부가 판단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시민단체들은 1단계운동이 막힐 경우 합법 여부에 상관없이 더욱 강경한 행동을 할 것으로 보인다. 경실련 이석연(李石淵)사무총장은 “이 정도를 불법이라고 한다면 다른 시민단체와 함께 낙선운동 등 진짜 불법선거 운동을 하겠다”고 말했다.

▽선관위 입장〓선관위 관계자는 “시민단체가 명단을 정당에만 전달하면 선거 의사표시로 볼 수 있으나 이를 언론에 공개했기 때문에 판단이 쉽지 않다”며 “조만간 회의를 열어 사전선거운동에 해당하는지 입장을 밝히고 명확한 기준을 제시하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선관위 관계자는 “선거법에 대한 엄격한 해석 못지않게 국민의 올바른 주권행사와 알권리도 중요하지 않느냐”고 말해 전향적인 결정이 내려질 것임을 암시해 결말이 어떻게 날지는 불확실한 상황이다.

▽법원 검찰 등 법조계〓판사들 사이에서도 의견이 엇갈린다. 서울지법의 한 판사는 “이미 언론에 보도된 내용을 정리해 발표하는 것인데다 유권자들의 합리적인 판단을 돕기 위한 것이므로 사전선거운동이라고 볼 수는 없지 않느냐”고 말했다. 그러나 다른 판사는 “시민단체의 발표는 어떤 식으로든 유권자의 행동에 직접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선거운동에 해당한다고 본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 판사는 “시민단체의 행위가 선거법에 위배된다 하더라도 형법상의 ‘정당행위’에 해당해 처벌대상이 될 수 없기 때문에 별도의 검토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검찰도 정치권의 고발 등에 대비해 법률검토 작업에 착수했다. 검찰 관계자는 “특정정당이나 후보를 지지 또는 반대하거나 지지 반대할 것을 권유한다면 선거법에 저촉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 관계자는 “시민단체가 자체 공천 가이드라인을 만들어 공천반대 인사 리스트를 작성해 발표하는 것은 선거법에 위배되는지 명확하지 않다”고 말했다.

<이수형·선대인·박윤철기자> sooh@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