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옷로비 청문회]배정숙씨가 '깃털'이라는데 '몸통'은 누구?

  • 입력 1999년 8월 23일 19시 40분


옷 로비 사건을 실제 연출한 인물은 과연 누구였을까.

국회 법사위가 23일 청문회를 열어 강인덕(康仁德)전통일부장관의 부인 배정숙(裵貞淑)씨 등을 상대로 조사한 결과 배씨가 이 사건의 ‘총감독’이었다는 검찰 수사결과와는 다른 정황들이 속속 드러나고 있다.

검찰은 배씨가 신동아그룹 최순영(崔淳永)회장의 부인 이형자(李馨子)씨에게 옷값 대납을 요구하며 김태정(金泰政)전법무부장관의 부인 연정희(延貞姬)씨에게 로비를 시도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연씨가 이를 거부해 결국 로비는 실패로 끝나고 이 사건의 실체는 ‘실패한 로비’ ‘사기 미수극’에 불과했다는 게 당시 검찰의 결론.

배씨는 이날 검찰 출신 한나라당 정형근(鄭亨根) 안상수(安商守) 최연희(崔鉛熙) 의원 등의 질의에 “옷값 대납요구는 물론이고 로비를 한 사실도 없다”며 로비혐의를 전면 부인했다.

특히 배씨는 야당의원들의 질의에 “서울중앙병원에서 이형자씨와 동생 이형기씨를 만나 ‘옷값 대납 요구를 한 일이 없지 않느냐’고 항의하자 이들은 ‘라스포사 정일순(鄭日順)사장이 그랬다고 말했을 뿐’이라고 답했다”고 진술했다.

배씨는 당시 이형자씨에게 재차 “그러면 왜 대질하러 왔느냐”고 말하자 당시 이씨가 침묵을 지켰으며 이 과정을 당시 수사검사가 분명히 들었다고 주장했다.

이와 함께 야당의원들은 옷 로비의 배후는 배씨가 아니라 라스포사 정사장일 가능성을 시사하는 질문을 여러차례 던졌다.

이들 질문의 요지는 정씨가 고위층과의 친분 등을 은근히 내세우며 이형자씨측에 밍크 코트 등 고급 옷을 강매한 뒤 장관부인들의 옷값 대납요구까지 한 것이 아니냐는 것.

이와 관련해 배씨는 야당의원의 질의에 “천용택(千容宅) 당시 국방부장관의 부인도 98년 12월19일(강창희장관 딸의 결혼식에 참석한 뒤) 라스포사에 함께 갔다. 천장관의 부인과 정씨는 친인척관계라고 들었다”고 진술했다.

야당의원들은 “라스포사의 종업원인 이모씨가 현재 행방불명인 상태로 알고 있다”며 정씨가 옷 로비 사건에 직접 개입했을 가능성이 있다는 의혹도 우회적으로 제기했다.

그러나 검찰 관계자는 “배씨가 자신에게 불리한 사실은 감추고 유리한 부분만 진술하는 것에 불과하다”고 반박했다.

이에 대해 이날 청문회를 지켜본 재야 법조인사들은 “만약 배씨가 옷 로비 사건을 일으킨 사람이 아니고 옷값 대납요구도 한 적이 없다면 검찰 수사결과는 ‘짜맞추기’라는 여론의 도마 위에 오를 수밖에 없다”고 지적하고 있다.

또 이럴 경우 배씨와 연씨, 정씨 등 주요관련자에 대해 검찰이 대질수사도 하지 않고 수사를 급하게 마무리하려 했다는 지적을 받게 될 전망이다.

이날 청문회에 대해 시민단체와 법조계 인사들은 “이 사건을 조종하고 일으킨 사람이 실제 누구인가는 이 사건의 실체를 파악하는 데 매우 중요한 요소”라고 말했다.

〈최영훈·김승련기자〉cyho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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