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愼축협회장 할복 순간-병원 표정]축협관계자 흥분 고함

  • 입력 1999년 8월 13일 01시 09분


12일 밤 국회 농림해양수산위원회 회의장 내에서 벌어진 신구범(愼久範)축협중앙회장의 할복자해사건은 전혀 예기치 못했을 뿐만 아니라, 좀처럼 보기 힘든 일이어서 여야 정치권과 농 축협 등 관계분야에 커다란 충격을 안겨주었다.

사건이 벌어진 국회 농림해양수산위원회 사무실 주변은 흥분한 축협직원들과 이를 말리는 국회 경위들 간에 격렬한 몸싸움이 벌어지는 등 밤늦게까지 아수라장을 이뤘다.

◆사건현장

이날 신회장은 회의가 시작되기 전부터 회의실 뒤편에 마련된 정부관계자석에 자리를 잡았다. 신회장은 법안심의가 계속되는 동안에는 자리에 앉아 진행상황을 유심히 지켜보다가 두 손을 맞잡은 채 고개를 숙이고 기도를 했다.

신회장은 그러다 한나라당 김기춘(金淇春)의원이 농 축협 통합법안에 대한 법안심사 보고를 마치자 천천히 회의실 중앙으로 걸어나갔다. 신회장은 이어 “그동안 감사했다”며 여야 의원들에게 인사를 한 뒤 갑자기 양복 상의 단추를 풀고 오른 손으로 공업용 칼을 꺼내 배를 그은 후 그 자리에 쓰러졌다.

신회장이 쓰러지자 회의장 안에 있던 국회 경위들과 관계자들이 신회장을 급히 안고 밖으로 나와 인근 여의도성모병원으로 옮겼다.

김영진(金泳鎭)농림해양수산위원장은 신회장이 회의장 밖으로 실려나가자 “남은 안건에 대해 이의 없느냐”고 물은 뒤 의사봉을 두드려 법안을 의결했다.

회의장에는 14명의 여야 의원이 있었으나 한나라당측에선 김기춘의원과 윤한도(尹漢道)의원 등 2명만 참석했다.

◆축협관계자들 반발

회의장 밖에서 구내방송을 통해 회의진행상황을 지켜보던 축협직원들은 일제히 “회장님이 다치셨다”며 극도로 흥분한 가운데 회의장으로 돌진, 국회 경위들과 몸싸움을 벌였다.

이들은 국회 직원들이 회의장 출입문을 막자 회의장 입구에서 농성을 벌이며 “정부 여당이 사람잡는 농 축협 통합을 강행했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축협관계자들은 또 “신회장의 상태가 위독하다”는 등의 말을 퍼뜨리면서 흥분하기도 했다. 이와 함께 일부 축협직원들은 국회 본청 앞에서 “야, 나쁜 놈들아”라고 고함을 지르며 법안통과에 격렬히 항의했다.

◆국회측 조치

국회 사무처측은 신회장이 병원으로 실려간 뒤 경위들을 동원, 농림해양수산위 회의장을 봉쇄해 축협관계자들의 회의장 진입을 저지했다. 사무처측은 또 회의장 앞 복도에 남아 있는 핏자국을 황급히 지우고 국회 경비대 1개중대를 국회 본청 앞뒤에 각각 배치, 출입자들을 철저히 통제했다.

여야 3당 원내총무들도 이날 밤 늦게 국회에서 긴급 회동, 신회장 할복기도사건에 대한 대책회의를 갖는 등 분주한 모습이었다.

◆병원 표정

신회장은 할복 직후 여의도성모병원으로 옮겨져 오후 10시5분부터 2시간에 걸쳐 수술을 받았다. 병원측은 “신회장의 배꼽부근 왼쪽 옆구리에서 오른쪽 옆구리까지 가로로 약 40㎝ 가량이 8∼10㎝길이로 찢어져 있었다”며 “상처부위의 형태로 보아 날이 예리한 칼로 할복한 것 같다”고 밝혔다.

병원측은 “병원으로 이송됐을 때 신회장은 혈압과 맥박이 위험할 정도로 피를 흘린 상황은 아니었고 의사의 질문에 간단한 대답도 할 수 있을 정도로 의식이 있었던 점으로 미뤄 일단 생명에는 지장이 없는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병원 관계자는 “대장과 소장의 손상 및 파열 여부를 구체적으로 살펴봐야 정확한 상태를 알 수 있다”고 덧붙였다.

이날 병원에는 신회장의 가족과 축협 관계자들이 속속 도착, 신회장의 수술경과를 지켜보았다.

축협 관계자들은 “신회장은 평소 농축협 통합을 저지하기 위해 파업을 하자는 강경파들의 주장을 합리적으로 대처하자며 만류했다”며 신회장의 할복에 다소 의아해 했다.

한 축협 관계자는 “11일 오후까지만 해도 신회장이 국민회의 의원들을 제외한 나머지 의원들을 설득, 농축협 통합법안에 대해 반대 입장을 표시하기로 약속을 받았으나 12일 오전 상황이 예상과 다르게 진행되자 충격을 받아 일을 저지른 것 같다”고 나름대로 해석했다.

〈송인수·공종식·이현두기자〉iss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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