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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1999년 3월 30일 19시 1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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텔레마케팅 업체들은 동창회명부 백화점카드회원명단 등을 입수해 통화 대상자를 선정하는 것으로 알려져 사생활 침해라는 지적까지 받고 있다. 그러나 정부는 마땅한 단속규정이 없다는 이유로 이를 방관하고 있는 실정이다.
얼마전 회사에서 야근을 하던 정모씨(35·서울 구로구 개봉동)는 느닷없이 걸려온 전화를 받고 불쾌하기 짝이 없었다. 수화기에서는 영어잡지 구독을 권유하는 여자 목소리가 ‘따발총’처럼 쏟아졌다.
정씨가 “밤에 이런 전화를 하면 어떡하느냐”고 항의하자 판촉원은 “밤에도 우리가 전화를 하면 반가워 하는 사람이 많은데 뭐가 잘못이냐”고 대꾸했다.
유명 영어잡지사의 자회사인 코리아데일리 소속의 이 판촉원은 “현재 50명 정도가 야간 판촉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코리아데일리측은 “4백명 정도의 전화판촉원이 있는데 이 중 일부가 야간 판촉을 한 것 같다”고 밝혔다.
서울 송파구 잠실동에 사는 이모씨(54)는 요즘 하루에도 10여통씩 걸려오는 부동산투자 권유 전화에 골머리를 앓고 있다. 심지어 밤 11시경에도 전화가 걸려온다.
이씨는 “어디서 알아냈는지 내 이름과 직업을 정확하게 알고 있었다”며 “짜증을 내면서 전화를 끊으려고 하면 ‘지금 전화를 끊어도 다른 전화판촉원이 또 전화를 할테니 이왕이면 나하고 통화하자’고 끈질기게 달라붙는다”고 말했다.
공공기관인 한국통신도 50여명의 전화판촉원을 두고 자사의 시외전화와 국제전화를 이용해줄 것을 권유하는 판촉활동을 벌이고 있다.
관계당국은 현재 텔레마케팅 업체가 전국적으로 4백곳에 이르는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업체가 늘어나면서 늦은 밤에도 전화를 거는 등 무분별하게 전화판촉이 이뤄지고 있으나 현행 ‘소비자보호법’이나 ‘방문판매 등에 관한 법률’에는 이를 규제할 수 있는 마땅한 규정이 없는 실정이다.
선진국의 경우 대부분 오후 8시∼오전 9시에는 판촉전화를 걸지 못하도록 법으로 규정하고 있다. 또 소비자가 전화국에 ‘판촉전화 불원(不願)’ 신청을 하면 전화국측이 이를 전화판촉회사에 통보해 절대 판촉전화를 걸지 못하도록 하고 있다.
한국소비자보호원 신용묵(愼鏞默)팀장은 “최근 전화판촉과 관련한 민원이 부쩍 늘었다”며 “우리나라도 하루 빨리 무분별한 전화판촉을 규제하기 위한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와 관련해 서울시는 “제도적 장치가 마련되기 전이라도 전화판촉 업체들을 상대로 전화시간대 제한 등 시민에게 불편을 줄 만한 행위를 하지 못하도록 행정지도를 펴겠다”고 밝혔다.
〈이기홍·서정보기자〉sechep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