官街, 설앞두고 『암행감찰 떴다』『감추자 돈봉투』

  • 입력 1999년 2월 10일 18시 59분


정부 중앙부처 K국장은 명절만 다가오면 암행감찰반에 당한 수모가 악몽처럼 되살아나 등골이 서늘해진다.

K국장은 지난해 추석을 며칠 앞두고 정부과천청사 부근 후미진 골목의 한 식당에서 기업체 관계자와 저녁을 먹고 나오다 암행감찰반과 마주쳤다.

암행감찰반은 다짜고짜 몸수색을 시작했다. ‘떡값’이나 뇌물봉투를 기대했던 암행감찰반은 별 소득이 없자 고개를 갸웃거리며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K국장의 입에서 안도의 한숨이 터져나왔다.

설날을 앞두고 공무원들이 떨고 있다.

국무총리실 감사원 행정자치부 등의 합동 암행감찰이 한창이기 때문이다. 총리실은 조사심의관실을 중심으로 20명을, 감사원은 5국에서 50명을 차출해 이달 초부터 집중적인 감찰활동을 벌이고 있다.

공무원들은 기업체 관계자의 사무실 방문을 극도로 꺼리는 분위기. 밖에서도 가급적 외부인사와 식사하는 것을 피하고 있다. 쥐도 새도 모르게 미행당해 봉변을 당할지 모르기 때문이다.

암행감찰반은 비리제보나 각종 자료를 수집, 집중 감찰 대상을 정한 뒤 미행 몸수색 사무실 수색 등 갖가지 방법을 동원해 비리를 찾아낸다. 비리혐의가 드러나지 않더라도 한번 당한 공무원은 수치감을 느낄 정도다.

10일 서울지검 특수2부(부장검사 김인호·金仁鎬)가 구속한 식품의약품안전청 김연판(金鍊判)의약품안전국장도 암행감찰에 꼼짝없이 걸린 경우.

감찰반은 업체들의 로비가 집중될 것으로 보이는 김국장의 사무실을 드나드는 ‘수상한 외부인’들을 감시했다.

마침내 D제약 간부가 김국장의 사무실을 방문한 것을 확인한 감찰반은 사무실에 전격 ‘진입’했다. 감찰반은 김국장을 벽으로 돌아세운 뒤 몸수색을 했고 이어 책상서랍 등을 뒤졌다.

서랍 속에서 1백만원 현금 다발이 발견됐다. 김국장은 이 돈의 출처에 대해 함구했고 ‘떡값’을 받았다는 자인서를 쓰라는 요구마저 거절했다.

감찰반은 서울지검에 지원을 요청했고 서울지검 특수부팀은 자물쇠로 잠겨 있던 캐비닛까지 뒤졌다. 1천만원 5백만원 등 뭉칫돈이 2천8백만원이나 나왔다.

그는 12개 제약업체로부터 의약품 인허가 및 안전검사에 편의를 봐주는 대가로 모두 3천6백만원을 받은 것으로 드러났다.

그는 지난달 23일 직속 상관인 박종세(朴鍾世)전식품의약품안전청장이 제약업체로부터 1억8천5백여만원을 받은 혐의로 구속된 당일에도 중앙제약 박인환회장으로부터 2천만원을 받는 등 ‘간 큰’공무원이었다.

총리실 관계자는 “뇌물받은 공무원을 적발하면 자인서를 받아 해당 부처에 자체 징계토록 통보하지만 김국장이 워낙 완강하게 부인해 검찰의 도움을 받게 됐다”고 말했다.

중앙부처의 한 공무원은 “정권초기라 그런지 암행감찰의 강도가 무척 센 느낌”이라며 “암행감찰반과 숨바꼭질할 필요가 없는 깨끗한 사회가 되길 바랄 뿐”이라고 말했다.

〈이수형·서정보기자〉soo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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