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들리는 검찰 下]정치중립 시비

  • 입력 1999년 2월 4일 19시 28분


한 고검장의 ‘수뇌부 퇴진’주장에 이은 검사들의 집단행동은 검찰이 얼마나 안팎에서 불신받고 있는가를 보여주는 증빙이다. 정치적으로 중립을 지키지 못하고 권력의 입맛을 살피는, 건국이래 지속되어온 병폐가 마침내 ‘빅뱅’처럼 터진 것으로 보아야 할 것 같다.

대검찰청과 수뇌부가 검사들의 술렁거림을 다스리기 위해 앞당긴 대토론, 즉 2일의 검찰수뇌부와 평검사회의를 통해 가까스로 반발의 불씨를 잠재웠다. 불씨가 언제 불꽃으로 타오를지 아무도 모른다.

어쨌든 평검사들은 검찰조직의 상명하복 전통에 걸맞지 않은 ‘아래로부터의 목소리’를 충분히 드러냈다.

검찰의 전체적인 세대교체와도 연관이 있는 성과다. 이번 사태를 주도한 사시 28회부터 30회는 이른바 ‘모래시계’ 세대. 80년대 반권력적인 대학분위기의 세례를 받은 이들의 목소리가 드디어 검찰 내에서도 일정부분 힘을 얻어가기 시작한 것이다.

이번 사태로 소장층에 의해 제기되고 불거진 ‘검찰의 정치적 중립’문제는 과연 어떤 식으로 수습되고 축적될 것인가. 평검사 회의에서 △검찰총장의 용퇴론 △법조비리 수사의 문제점△파행적인 인사 △대언론관계 등이 논의됐지만 검찰의 정치적 중립이 가장 비중있게 다뤄졌다. 한 검사는 “다른 것은 몰라도 검찰의 정치적 중립에 대한 가시적 조치가 진행되지 않는다면 언제든지 불씨가 다시 살아날 수 있다”고 말했다.

서울지검의 한 검사는 “평검사들이 검찰총장을 중심으로 일치단결하기로 한 것에 대해 밖에서는 여러가지 말이 있을 수 있지만 정치권 등 외부세력의 압력을 배제하기 위해서는 검찰 내부의 단결이 보다 중요하다는 판단 때문이었다”고 말했다.

이 검사는 이어 “평검사들의 입장에서 볼 때 총장 용퇴 시기를 놓친 이상 검찰중립을 위한 수단인 ‘총장 사퇴’에 비중을 두기보다는 검찰중립을 위한 제도 개혁의 요구를 확실히 보장받는 선에 더 비중을 두게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따라서 앞으로 총장은 정치적 중립의 가시화 혹은 제도적 개혁이라는 부담을 지게 됐다. 단편적인 제도 개선의 차원이 아니라 해묵은 과제를 털어내기 위한 획기적 방안이 제시돼야 한다는 것이다.

정치적 중립문제와 더불어 총장임기제가재론되고있다. 당초에는총장의임기를보장함으로써 정치권의 눈치를 보지 않게 하겠다는 취지에서 임기제를 도입했지만 별 실효를 거두지 못했다.

검찰 출신의 한 변호사는 “총장 임기가 법에 명시돼 있지만 언제든지 집권자의 의지에 따라 총장을 바꿀 수 있다는 점 때문에 총장은 임기에 연연할 수밖에 없고 더욱 정치권에 예속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그래서 임기제건 그 이전의 임명제건 모두 사람의 문제이기 때문에 총장후보에 대한 인사청문회를 강화해야 한다는 주장도 설득력을 얻고 있다. 평검사와 시민단체들도 어느 정도 동의하는 분위기다.

우선 검찰총장의 임명이 투명하게 이뤄져야 한다는 것. 총장을 정점으로 하는 피라미드식 검찰조직에서 총장의 정치적 중립이 곧 검찰의 정치적 중립을 보장하는데 관건이라는 지적인 것이다.

검사 대부분의 인사‘줄대기’경쟁부터 막는 방안을 찾아야 한다는 얘기도 나온다. 한 검사는 “평검사 때부터 정치권이나 외부에 대한 인사 ‘줄대기’를 해야한다면 그 검사는 결국 권력 지향적으로 변할 수밖에 없고 이것이 현재 우리 검찰의 자화상”이라고 말했다. 그래서 권력의 구체적인 지시가 없어도 검찰 스스로가 권력의 눈치를 보는 것은 인사 줄대기같은 원죄(原罪)때문이라는 것이다.

〈서정보기자〉suhcho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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