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휘청거리는 부산경제]곳곳에 문닫은 공장 수두룩

입력 1999-01-22 19:41수정 2009-09-24 1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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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경제가 심각한 수준에 이르고 있다. 실업률이 10%대를 넘어섰고 어음부도율도 전국 7대 도시 중 가장 높다.

부산경제난의 심각성은 산업현장 곳곳에서 드러나고 있다.

21일 오후 부산 강서구 신호동 삼성자동차 공장. 94만평의 매립지에 덩그러니 자리잡은 이 공장은 대우의 삼성자동차 부문 인수 소식이 들려온 지난해 12월7일 이후 기계소리가 멈췄다. 정문에는 자동차 운반대를 쌓아올린 바리케이드가 앞을 가로막고 있다. 진입로에 들어서니 건물 곳곳에서 ‘삼성자동차 문닫으면 부산경제 끝장난다’는 등의 구호가 나붙어 있다.

▼ 5만명 고용감소 우려 ▼

이곳에서 차로 10여분 거리에 있는 녹산국가산업단지. 정부가 자동차 부품업체를 전문 육성하기 위해 97년 조성한 1백20만평의 이 공단에는 자동차 부품업체 2곳만 썰렁하게 입주해 있다. 그나마 모두 휴업상태.

자동차시트 생산업체인 동성기공에 들어가봤다. 공장장인 전시환(全時煥)씨 혼자 회사를 지키며 납품업체들로부터 걸려오는 하소연 전화를 받고 있었다. “설까지만 견뎌봅시다.” “어떻게든 해결책이 나오지 않겠습니까.” 업체들을 달래는 듯 전씨의 목소리에는 힘이 없었다.

부산시 기업지원과 최재정(崔載正)계장은 “동성기공은 부산의 대표적인 기업중 하나인 동성화학의 주력기업”이라며 “동성기공이 도산할 경우 동성화학 그룹은 물론 부산 경제가 더 어려워질 것”이라고 우려했다.

삼성자동차 유치와 함께 1조2천억원의 토착자본을 쏟아부은 2천3백여개 협력업체 중 60%가량이 현재 휴업 상태에 있다. 삼성자동차 부산공장 근로자와 영업사원을 합하면 3천6백여명. 여기에 1∼3차 협력업체의 1만7천명과 설비공급 정비 운수 등 관련 사업의 고용인원까지 합치면 7만5천명이 삼성자동차와 직 간접적으로 연결돼 있다. 4인가족을 기준으로 하면 30만명의 생계가 걸려 있는 셈이다.

부산발전연구원의 정승진(鄭勝鎭)선임연구원은 “삼성차 SM5의 생산이 중단될 경우 3조8천억원의 생산 감소, 4만8천명의 고용감소를 가져올 것”이라고 우려했다. ‘2002년에 SM5가 50만대 생산될 경우 20만명의 고용효과를 창출하고 부산지역 제조업 매출액의 30%를 차지할 것’이란 당초의 전망은 신기루가 돼버렸다.

부산경제의 위기는 삼성자동차 관련 기업들만의 일이 아니다. 21일 오후 2시경 부산 사상공업지역 내 봉제업체인 협진양행 공장내 자동차시트 제조라인. 2천여평의 생산라인은 텅비어 있었다. 작업물량이 없어 근로자들이 오전근무만 마치고 다들 퇴근했기 때문이다.

▼ 산업구조 취약 치명타 ▼

이 라인엔 월 1만6천개의 시트를 생산할 수 있는 설비가 갖춰져 있지만 지난해 평균 생산량은 월 3천5백개. 97년말에 1백40명이었던 생산라인의 근로자는 39명으로 줄었다. 정리해고된게 아니라 생활고를 견디다 못해 스스로 떠나버린 것. 이들이 받는 월평균 임금은 50만원도 채 안되고 그나마 단축근무로 35만원선으로 줄었다. 이 회사 박기옥서무과장은 “숙련 기능공들을 잡고 싶어 격일제, 단축근무 등 온갖 방법을 다 동원해 봤지만 이젠 포기한 상태”라고 말했다.

사상공업지역은 한때 부산 전체 기업의 40%를 웃도는 3천여개의 기업체가 입주했던 곳. 그러나 이젠 곳곳에 버려진 공장, 공장매도 안내 현수막이 을씨년스럽다. 신평―장림공단에 몰려 있는 기계조립 금속 업종도 여건이 나쁘긴 마찬가지다. 지난해 부도로 쓰러진 부산 지역 기업은 무려 2천5백46개에 달한다.

왜 유독 부산 경제가 이처럼 IMF한파에 치명타를 입은 것일까. 전문가들은 부산 경제구조 자체의 취약성을 먼저 지적한다. 부산 상공회의소 관계자의 설명이다.

“부산지역 1만6천개 기업체중 종업원3백명 이상인 업체는 불과 1백50개에 불과하다. 즉 99% 이상이 영세기업인 것이다. 그만큼 자체 경쟁력을 확보하기 어려워 조그만 외풍에도 쉽게 흔들리고 좌초하기 쉬운데 여기에 IMF태풍이 몰아친 것이다.”

부산을 지탱했던 신발 섬유 금융 서비스 철강 선박부문 중 신발 섬유업종은 이미 오래 전에 사양산업에 들어섰다.

또 70년대부터 97년까지 시 전체가 성장억제 지역으로 묶이는 바람에 땅값이 비싸 중견 제조업체들이 다른 지역으로 계속적으로 빠져나갔다. 77년부터 지난해까지 부산에서 경남지역으로 이전한 업체가 1천3백5개. 그나마 명맥을 유지해 왔던 철강산업도 최근 동국제강이 포항으로 공장을 옮겼다.

이처럼 취약한 산업구조에 IMF한파는 혹독하게 몰아쳤다. 지난해 부산지역 5개 종금사중 4개가 퇴출됐다. 이어 6월엔 이 지역 중소기업 전문은행이었던 동남은행이 퇴출돼 6월부터 서너달간 지역금융이 사실상 마비돼 중소기업들의 무더기 부도사태로 이어졌다.

▼ 유언비어 나돌기도 ▼

4월에 개장될 선물거래소가 경제 회생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기대가 있지만 부산 경제의 하락세를 되돌리기는 쉽지 않을 것이란 게 대부분 경제전문가들의 분석이다.

부산시 안준태경제진흥국장은 “부산시민들이 삼성차 빅딜 자체를 무조건 반대하는 것은 아니다”며 “대우가 SM5를 당초 약속대로 5년간 계속 생산해준다면 이 문제는 풀릴 수도 있다”고 말했다.경제악화를 지역감정과 연관시켜 부추기는 온갖 유언비어도 나돌고 있다. 부산시 기장군 소재 자동차 부품업체인 동광정기의 김광홍(金光弘)사장은 “마치 80년 광주민주화운동때 타지역에서 그 실상을 몰랐듯이 현재 부산 경제의 심각성을 정치권과 국민이 제대로 절감하지 못하는 것 같다”며 “야권은 부산경제의 침체를 지역감정으로 연결시키려고 하고 여권은 이를 비판하기만 할뿐 대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고 안타까워했다.

〈부산〓조용휘·이기홍·박현진·윤종구기자〉sechep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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