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강산관광 2개월/의미]대규모 인적교류 길터

입력 1999-01-17 19:11수정 2009-09-24 13: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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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평생 소원이 무엇이드냐/우리 손주 손목잡고 금강산 구경일세/꽃피어 만발하고 활짝 갠 이 날을/기다리고 기다리다 이 내 청춘 다갔네.”

한때 금지곡이었던 ‘늙은 군인의 노래’(김민기 곡·양희은 노래)3절은 금강산 구경이 ‘꿈’일 수밖에 없었던 냉전시대의 상황이 그 배경이다.

남북간 첨예한 대치상황이 지속됐던 지난 반세기 동안 실향민을 포함해 우리 국민이 금강산을 찾아 자유롭게 관광을 즐긴다는 것은 통일 이후에나 가능한 막연한 미래의 일로 여겨졌었다. 금강산관광 실태를 파악하기 위해 현지에 다녀온 통일부의 한 당국자는 “금강산관광이 실현된 것은 기적”이라며 벅찬 소회를 감추지 못했다.

이제 실행 두달을 맞은 금강산관광은 남북분단사에 대규모 인적교류의 한 획을 그은 역사적 사건으로 기록될 만하다.

17일 현재 금강산을 다녀온 관광객 수는 모두 1만5천명을 넘어서 89년부터 지난해까지 10년간의 방북자 5천7백24명보다 2.6배 이상이다. 현재 장전항에는 공연장 등을 건설하는 현대측 인력과 관광객들을 포함해 많을 때는 하루 1천5백명 이상의 우리 국민이 머무르고 있다.

금강산관광의 가장 큰 의의는 남북간에 화해협력과 평화공존이 가능하다는 것을 실증했다는 데 있다. 북한이 문호를 개방한 목적이 경제적 실익을 챙기는 데 있다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그 의미는 축소되지 않는다.

지난해 남북간에는 북한의 잠수정 침투 등 잇단 도발과 금창리 지하핵의혹시설에 대한 사찰문제 등으로 긴장 요인이 적지 않았다. 금강산관광이 아니었다면 남북관계는 이로 인해 크게 악화될 수도 있었다는 얘기다.

여전히 보수층 일각에서 금강산관광에 대해 곱지않은 시각을 갖고 있지만 금강산관광으로 상징되는 남북교류협력은 거역할 수 없는 시대적 대세로 자리잡았다.

최근 정부가 북한에 비료와 영농자재를 지원할 방침을 표명하고 북한도 백두산 칠보산을 추가로 개방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는 것은 화해협력의 물꼬가 점차 큰 물줄기를 이뤄나가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한기흥기자〉eligiu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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