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9대입 논술문제-해설/이화여대]

  • 입력 1999년 1월 11일 19시 28분


▼인문계▼

다음 글은 어떤 부족의 삶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이러한 삶이 초래하는 문제점을 지적하고, 이를 극복하기 위한 방안을 1천5백자 안팎(±1백자)으로 논술하시오.

옛날 아라비아에 트로글로다이트라고 하는 작은 부족이 있었다. 역사가들의 말에 따르면 이 부족은 인간보다는 동물에 더 가까웠던 이전 시대 트로글로다이트의 후손들이라고 한다.

그러나 내가 지금 말하는 이 부족은 그들의 선조들처럼 그렇게 이상하게 생기지도 않았고 곰처럼 털이 나지도 않았다. 그들은 끽끽거리지도 않았으며 눈도 둘이 달려 있었다. 하지만 그들은 아주 사악하고 잔인하여 자기들 사이에 어떤 공정성이나 정의의 원칙도 없었다.

그들에게는 외국 태생의 왕이 있었다. 왕은 부족의 타고난 사악함을 고치기 위하여 사람들을 엄하게 다스렸다. 그러자 사람들은 음모를 꾸며서 왕을 죽이고 왕족들까지도 모두 없애버렸다. 그리고 나서 그들은 통치 기구를 만들기 위해 모임을 가졌고, 많은 의견 다툼을 한 뒤에 행정관들을 뽑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사람들은 행정관들을 부담스러워 하여 참을 수가 없게 되었다. 그러하여 새로 뽑힌 행정관들마저 죽임을 당하고 말았다.

새로운 통제로부터 벗어나자 이 부족 국가는 타고난 사악함만이 지배하는 나라가 되었다. 이제 사람들은 각기 어느 누구의 말도 따르지 않을 것이며, 자신의 이해만을 돌볼 뿐 다른 사람에 대해서는 상관하지 않기로 합의했다. 이 만장일치의 결정은 부족 구성원 각자의 마음에 꼭 드는 것이었다.

그들은 이렇게 말했다. “나와 아무 상관없는 사람들을 위해 죽도록 일할 이유가 무엇인가? 이제 나는 나만을 생각할 것이다. 나만 행복하면 되지 다른 사람이 어떻게 사는지 나와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나에게 필요한 것을 모두 가질 수 있다면, 다른 사람들이 불행하다고 해도 내가 상관할 바가 아니다.”

때는 바야흐로 곡식을 수확해야 하는 계절이었다. 마른 산악지대의 경작지가있는가 하면, 수로(水路)가 잘 갖추어진 낮은 경작지도 있었다. 그 해는 몹시 가물어서 높은 지대의 농사는 완전히 실패한 반면 물 공급이 잘 된 낮은 땅은 큰 풍년이 들었다. 많은 수확을 거둔 사람들이 추수한 곡식을 나누기를 거부했기 때문에 많은 산악지대 거주자들이 굶어 죽었다.

다음 해에는 비가 많이 내렸다. 높은 지대의 땅은 이례적으로 비옥해졌고 낮은 지역은 홍수가 났다. 또 다시 인구의 반이 굶주림으로 아우성쳤지만 작년에 홀대를 받았던 사람들이 이번에는 굶주린 사람들을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지도적 위치에 있었던 한 시민에게 아름다운 부인이 있었다. 그의 이웃이 그 부인을 사모한 나머지 그녀를 납치해 갔다. 두 사람 사이에 큰 싸움이 벌어졌고 서로 모욕적 언사와 주먹다짐을 주고받은 뒤에, 두 사람은 이전의 공화국에서 영향력을 가졌던 어떤 사람의 결정에 따르기로 합의했다.

두 사람은 그에게로 가서 각자의 사정을 이야기했다. 그러나 그는 “이 여자가 누구에게 속하든 나와 무슨 상관이란 말입니까? 내게는 경작해야 할 땅이 있는데 당신네 싸움치레 하느라 내 일도 못하는 건 싫소. 나를 그냥 놓아두고 귀찮게 하지 마시오”라고 말하고는 자리에서 일어나 자기 밭으로 일하러 나갔다.

힘이 센 납치자는 죽어도 여자를 내주지 않겠다고 다짐을 했고, 부인을 빼앗긴 사람은 이웃의 불의와 심판관의 냉담함으로 인해 절망에 차서 집으로 향했다. 도중에 그 산에서 내려오는 아름다운 젊은 여자와 만나게 되었는데 아내마저 잃은 처지에서 그는 그녀에게 끌렸고, 그녀가 아까 냉담했던 심판관의 부인임을 알고는 한층 더 마음이 끌렸다. 그는 그녀를 잡아채서 자기 집으로 데리고 갔다.

비옥한 땅을 갖고 부지런히 경작했던 한 사람이 있었다. 두 이웃이 결탁을 해서 그를 집에서 내쫓고 땅을 가로챘다. 두 사람은 혹시 있을지도 모를 또 다른 강탈자를 막기 위해 상호 연맹 관계를 맺었고, 여러 달 동안 실제로 서로를 보호해 주었다. 그러나 혼자 차지할 수 있는 것을 나누기가 아까웠던 동업자 중 하나가 다른 하나를 죽이고는 땅을 독차지했다.

그러나 그의 소유 기간은 그리 길지 않았다. 또 다른 두사람이 와서 공격을 했고, 혼자서 두 사람을 방어하기에는 힘이 너무 약했기 때문에 죽임을 당하고 말았던 것이다.

입을 것이 없었던 한 사람이 상인이 팔려고 내놓은 양털을 보았다. 가격을 물어보니 상인은 “보통은 밀 두 되 값만 받는데 지금은 여덟 되를 사야겠으니 네 배를 쳐서 받아야겠소”하고 말했다. 다른 방도가 없었기에 그는 달라는 대로 값을 지불했다. 상인은 돈을 받아 챙기면서 말했다.

“좋아요. 이제는 밀을 좀 사야겠군요.” 양털을 샀던 사람이 말했다. “지금 뭐라고 했습니까? 밀이 필요하다구요? 내게 팔 것이 조금 있는데, 다만 한 가지 걱정되는 것이 값입니다마는, 밀 값이 아주 비싸다는 것은 아셔야 합니다. 굶어 죽는다고 온 데서 난리입니다. 하지만 아까 받았던 제 돈을 다시 주시면 밀 한되를 드리지요. 당신이 굶어 죽는다 해도 그 값 아래로는 못 팝니다.”

그러는 동안 이 지역에 몹쓸 병이 창궐했다. 이웃 나라에서 유능한 의사가 와서 그에게 오는 모든 환자들의 병을 치료해 주었다. 병이 다 지나간 뒤에 의사는 환자들 집을 돌며 치료비를 요구했지만 모두에게서 거절당했다. 의사는 오랜 여독에 지쳐 빈손으로 자기 나라로 돌아갔다. 오래지 않아 같은 병이 전보다 더한 기세로 그 지역을 휩쓸었다. 이번에는 트로글로다이트 부족 사람들이 직접 그에게로 와서 병을 고쳐 주기를 빌었다. 그러나 의사는 냉정하게 대답했다. “돌아들 가시오. 당신들은 정의롭지 못합니다. 당신들의 영혼 안에는 당신들이 치유받고자 하는 병보다 더한 독이 있습니다. 당신들에게는 아무런 인간성도 없고 공정한 규칙도 없기 때문에 이 세상에 살 자격이 없습니다. 당신들을 벌하고 있는 신의 정당한 분노를 어기고 당신들을 치료한다면 나는 신을 거역하는 일을 하게 될 것입니다.

(몽테스키외 〈페르시아인의 편지〉)

▼자연계▼

분자생물학 등 현대 자연과학의 발달이 전통적 인간관에 영향을 미친다는 주장이 있다. 아래의 제시문 (가)와 (나)의 견해에 대한 자신의 입장을 밝히되,글 (다)를 참조하여 논술하시오.

(가) 인간이 동물적인 존재임은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다. 그렇지만 인간은 동물성에 더하여 이성(理性) 등 인간 고유의 능력이나 특성을 지니고 있어, 인간은 스스로를 동물 이상의 존재라고 생각해 왔다.

그런데 현대 분자생물학의 유전자 분석에 따르면, 인간은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것과는 달리 여타의 동물들과 그리 다르지 않은 존재이다. 분자생물학자들은 모든 생명체의 기초는 유전자라고 한다. 일부 학자들은 생명체들의 모든 특징이나 기질은 물론, 인간의 행위 방식, 심지어 성품까지도 유전자에 의해 결정된다고 주장한다.

실제로 동물들의 유전자를 분석해 보면, 길이 1㎜밖에 안 되는 미물인 선충(線蟲)과 인간간의 유전자적 동일성은 40%에 이른다. 인간과 오랑우탄간의 유전자적 동일성은 96.4%나 된다. 나아가 인간과 침팬지간의 유전자적 동일성은 98.4%에 이르며, 양자간의 차이는 겨우 1.6%에 불과하다. 다시 말해서, 유전자적 관점에서 보면 인간은 거의 침팬지와 같은 존재라는 말이다.

(나) 맹자께서 말씀하셨다.

사람들은 살기를 원하지만, 삶보다 더 간절히 바라는 것이 있으므로 구차하게 삶을 얻으려 하지 않는다. 사람들은 죽기를 싫어하지만, 죽음보다 심하게 싫어하는 것이 있으므로, 죽음을 가져오는 환난을 피하려 하지 않는다. 만약 사람이 삶보다 더 간절히 원하는 것이 없다면, 살기 위해서는 무슨 일이라도 할 것이 아니겠는가? 사람에게 죽음보다 싫어하는 것이 없다면, 죽음을 피하기 위해서는 무슨 일이라도 할 것이 아니겠는가?

그렇기 때문에 삶을 위한 일이라도 의(義)가 아니면 하지 않는 일이 있고, 피할 수 있는 환난과 죽음이라도 의를 위해서라면 피하지 않는 경우가 있다. 사람에게는 삶보다 더 간절히 원하는 것이 있고, 죽음보다 더 싫어하는 것이 있다.

군자(君子)만이 그런 마음을 갖고 있는 것이 아니라, 모든 사람들이 다 그런 마음을 가지고 있다. 다만 군자는 그런 마음을 잃지 않을 뿐이다. 인(仁)은 사람의 마음이요, 의(義)는 사람의 길이다. 사람들이 그 길을 버리고 따르지 않으며, 그 마음을 잃어버리고 찾을 줄 모르니 딱하기 그지없다. 사람이 닭과 개가 도망가면 찾을 줄 알되, 마음을 잃고서는 찾을 줄을 알지 못하니, 학문하는 길은 다른 것이 아니다. 그 잃어버린 마음을 찾는 것일 뿐이다.

〈맹자(孟子)〉

(다) 알프스 영양(羚羊)들이 당신들을 잘 피할 수 있었던 것은 아마도 그들이 사람들처럼 생각을 하거나 말을 할 수 없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들의 모든 기능은 산악지대에서 어떠한 공격을 만나도 몸을 안전하게 피할 수 있도록 특수화되어 있습니다.

어떤 동물종(動物種)은 자연도태의 결과로 어떤 특정한 육체적 기능을 거의 완벽에 가까울 정도로 발달시키고 있습니다. 그럼으로써 동물종은 생존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하여 바로 이러한 특수화된 기능에 의존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 까닭에 외계의 조건이 심하게 변하면 이들은 변화된 환경에 순응하지 못하고 죽고 맙니다. 유독 사람의 경우에만 이 특수화가 다른 방식으로 일어나고 있는 것입니다. 인간의 신경계는 사람으로 하여금 생각하게 하고 말할 수 있게 하는데, 사람들은 이를 통해 동물보다 훨씬 큰 규모의 공간과 시간을 가질 수 있게 되었습니다.

사람은 과거에 무엇이 있었는지를 기억할 수 있고, 미래에 무엇이 일어날 것인가를 예측할 수도 있습니다. 공간적으로 먼 곳에서 일어나는 것을 상상할 수도 있으며, 다른 사람들의 경험을 이용할 수도 있습니다. 따라서 인간은 어떤 의미로는 동물보다 훨씬 더 융통성이 많고 환경에 잘 순응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인간은 이와 같은 융통성의 면에서 특수화 되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사고와 언어가 이렇게 우선적으로 발달함에 따라, 더 일반적으로 말한다면, 지능이 과도하게 발달함에 따라 개체적인 목적에 봉사하는 본능적인 동작능력은 오히려 위축되었습니다.

이런 점에서 인간은 동물보다 열등한 존재입니다.인간은 동물처럼 예민한 후각을 갖지 못하고 있으며, 저 알프스 영양들처럼 마음대로 산을 뛰어 오르내릴 수도 없습니다. 하지만 사람은 공간적, 시간적으로 광범위한 영역을 지배함으로써 이와 같은 결점을 보충하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 경우에 언어의 발달은 아마 결정적인 제 일보였을 것임에 틀림없습니다. 그 까닭은 언어와 사고의 능력은, 다른 모든 육체적인 능력과는 달리, 개체적인 개인들 안에서 발달한 능력이 아니라, 개체들로 구성된 사회 속에서 발달한 능력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언어를 다른 사람들로부터 배웁니다. 따라서 언어란 인간들 사이에 펼쳐진 그물입니다. 그리고 우리 각자는 자기의 인식과 행동의 가능성으로서 이 그물에 매달려 있는 것입니다. (하이젠베르크 〈부분과 전체〉)

▼해설▼

인문계 제시문은 국가와 법의 질서가 무너진 상황에서 눈앞의 이익만 추구하다 난국에 봉착하게 되는 가상의 부족 이야기이다.

이 논제는 이기적인 삶이 결국 나쁜 결과를 가져오는 이유와 대안을 제시하도록 요구하고 있다.

왕권을 둘러싼 권력투쟁 등 여러가지 사례가 제시되고 있지만 인간성과 공정한 규칙이 결여된 사회는 결국 자기파괴적인 결과를 초래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 핵심이다.

문제 해결의 방안으로는 우선 제시문에 등장하는 부족민들의 삶이 초래하는 문제점으로 ‘극단적인 자기 이익 추구는 자기 파멸을 불러온다’는 것을 지적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나서 근시안적으로 생각으로 이기적인 삶을 살아서는 안되는 이유와 그 대안을 제시하면 될 것이다.

자연계 제시문은 인간에 대해 각기 다른 관점을 보여주는 2개의 글 (가) (나)와 자신의 입장을 논술하는 데 참조할 글 (다)로 돼 있다.

(가)는 인간과 동물의 유전학적 유사성을 지적하는 내용이고 (나)는 ‘맹자’의 한 부분으로서 인간이 동물과 달리 이상과 도덕을 지닌 존재임을 강조하고 있다.

(다)는 하이젠베르크의 ‘부분과 전체’의 한 부분이다.

이는 인간과 동물의 공통점은 자신이 지닌 어떤 기능을 특수화 고도화 한다는 것이고 차이점은 동물이 특정한 육체적 기능을 고도화 한다면 인간은 언어와 사고의 능력을 고도화 한다는 것이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우선 제시문에 나타난 인간에 대한 세 가지 관점을 이해해야 한다.

그리고 자연과학의 발달이 오늘날의 인간과 사회에 미치는 영향을 바탕으로 바람직한 인간 이해의 가능성과 근거를 논리적으로 서술해야 한다.

〈이진녕기자〉jinny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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