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8년만에 귀향 장희복씨 『가족소식 들었으면…』

  • 입력 1998년 11월 18일 20시 51분


“나 금강산 보러가는 거 아니야. 고향찾아 가는 거지.”

금강산 초입(初入)의 강원 고성군 외금강면 온정리가 고향인 장희복(張熙福·69·경기 고양시)씨. 장씨는 17일 밤 설렘으로 잠을 이루지 못했다.

48년전 부모 형제를 남겨 두고 떠난 고향. 죽어서야 갈 수 있을거라고 체념했던 바로 그 고향길이 하루 앞으로 다가왔기 때문이었다.

‘가족들이 살아 있기나 한 것일까. 행여 만날 수 있을까.’

‘열두살이던 동생은 환갑일텐데….’

18일 새벽 6·25전쟁의 소용돌이에서 한달이면 돌아오겠지 하고 떠난 고향길을 되짚어 보는 장씨의 마음에는 이런저런 회한(悔恨)이 꼬리를 물었다.

“21세때 혈혈단신으로 남하했지요. 83년 KBS의 이산가족찾기행사에서 몇날을 세운 끝에 사촌형(80)을 만난 게 전부예요. 형이 치매에만 안 걸렸어도 함께 갔을 겁니다.”

동해항 현대금강호로 향하는 관광버스에서 ‘두런두런’ 다른 실향민들과 향수를 달래던 그는 조심스레 현대 관계자에게 물었다.

“주민을 만날 수 있을까요. 우리 일가친척이 거기에 사는데.”

그러나 이 관계자는 온정리가 철조망과 담으로 둘러싸여 있고 북한군인들의 경계가 삼엄할 것이라며 주민과의 접촉은 불가능하다고 설명했다. 또 집도 모두 바뀌어 옛 모습을 알아보기가 쉽지 않을 거라는 말도 덧붙였다.

“그러면 휴게소는 없나요. 거기서 일하는 주민이 있으면 물어봐도 될텐데.”

장씨의 바람처럼 온정리에는 관광객이 쉴 휴게소가 있다. 그러나 젊은 사람들이 종업원으로 근무한다는 게 현대측의 안타까운 대답이었다.

“20, 30대면 모를텐데. 적어도 쉰살은 넘어야 하는데….”

그는 달리는 차창 너머를 바라보며 한동안 말이 없었다. 다른 실향민들도 조용히 침묵에 잠겼다.

“거기도 사람사는 세상인데 설마 가족 소식 못듣겠어.”

이날 오후 2시경 일찌감치 배에 오른 장씨의 마음은 부푼 기대와 함께 벌써 고향으로 달려가고 있었다.

“정 안되면 삼일포를 지나갈 때 멀리서 고향을 지켜볼 수는 있겠지. 옛날 우리 집이 신작로 옆에 있거든. 고함이라도 한번 지를 거야.”

〈이헌진·박윤철기자〉mungchi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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