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8올림픽 10년]수출「공든탑」10년 과소비에 와르르

입력 1998-09-16 19:48수정 2009-09-25 0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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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8 서울올림픽이 우리 경제에 남긴 최대의 후유증은 거품(버블)의 확산이다.

한국경제의 성장패턴이 수출중심에서 내수중심으로 전환하면서 소비산업이 기형적으로 팽창했다.

이는 87년부터 시작된 민주화열기와 맞물리면서 노사분규격화 고임금 3D업종(더럽고 위험하고 힘든 일)기피현상 등 갖가지 부작용을 낳았다. 이와 함께 장기적 안목의 사회간접자본(SOC)투자를 소홀히 해 산업의 경쟁력 약화를 초래했다는 분석이다.

▼소비중심으로 바뀐 성장패턴〓현대경제연구원 이보성(李普聖)주임연구원은 “연평균 민간소비 증가율이 88년이전 10년간엔 연평균 5.8%였지만 88년이후엔 연평균 6.9%로 높아졌다”며 “88올림픽을 분기점으로 경제성장이 수출보다 가계소비에 의해 지탱되는 구조로 옮겨갔다”고 말했다.

정부가 올림픽 개최를 ‘선진국 진입의 신호’인양 선전하자 경제주체들이 덩달아 과소비로 치달은 것. 주식과 부동산 등 자산가치가 급상승하면서 과소비문화가 확산됐다.

수출증가율은 올림픽전 10년간 연평균 14.9%에서 올림픽후 10년간엔 연평균 8.4%로 뚝 떨어졌다.

반면 수입증가율은 같은 기간에 9.8%에서 10.8%로 높아졌다.

이같은 내수중심 성장구조는 소비성 산업에 인적 물적 자원을 집중시켜 결과적으로 수출경쟁력을 더욱 약화시켰다.

▼버블경제 지속과 구조조정의 실기(失機)〓국토개발연구원 송경환(宋炅煥)박사는 “88올림픽을 전후한 우리 경제의 문제점은 자금이 부동산과 주식시장에 몰렸다는 것”이라며 “재벌들은 이 기간에 증시를 통해 쉽게 조달한 자금으로 방만한 재테크 투자를 벌이면서 부동산을 사들였다”고 말했다.

증시는 86년초 활황에 진입한 뒤 89년 4월 종합주가지수가 1007.77에 이르도록 치솟았다. 기업들은 과열 증시에서 조달한 자금을 투자효율이 낮은 부문에 방만하게 운용했다. 석유화학 등 산업에 대한 중복투자도 과도하게 이뤄졌다.

청와대 경제비서실의 배선영(裵善永)서기관은 “당시 기업공개의 요건을 강화하고 채권발행물량을 축소조절해 자금조달을 억제했어야 했다”고 지적한다. 부동산시장도 달아 올라 86년 7.3%였던 전국평균 땅값상승률이 87년에 14.67%, 88년에는 27.47%를 기록했다. 또 89년과 90년에는 각각 31.97%와 20.58%가 올랐다.

87년부터 90년까지 4년간 땅값이 무려 132.6%나 오른 것.

국제통화기금(IMF)관리체제를 초래한 직접적 원인인 외환위기도 올림픽을 전후한 시기의 지나친 낙관론에 뿌리가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올림픽을 계기로 무역 외환거래 자본시장 등의 개방화정책을 가속화하면서 이에 따른 대비책을 충분히 마련하지 못했다는 것. 정책당국은 올림픽 성공과 고성장 실적에 도취해 이같은 문제를 인식조차 하지 못하고 있었다는 지적이다.

종합주가지수가 92년 8월 459.07로 떨어지고 그해 전국평균땅값이 75년 통계작성 이후 처음으로 하락하면서 버블은 일단 꺼졌다.

대우경제연구소 이한구(李漢久)사장은 “정부는 92년 무렵에 금융 공공부문 노동시장 등에 걸쳐 우리 경제의 체질을 개선했어야 했다”며 “그런데도 정부는 경기를 부양한다며 오히려 돈을 풀어 경제의 부실이 깊어졌다”고 말했다.

▼SOC 투자소홀과 물류난〓경제전문가들이 올림픽의 부정적 효과로 꼽는 또 한가지는 SOC 투자소홀과 이에 따른 물류난이다.

당시 정부는 올림픽의 성공적 개최를 위해 올림픽지원에 재정투입의 최우선순위를 두었다.

예산청 관계자는 “당시 긴축재정이 유지되는 가운데 올림픽투자마저 겹치면서 SOC투자가 상대적으로 위축된 것이 사실”이라고 말했다.

〈임규진·백우진기자〉mhjh22@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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