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문사건 대질심문]『바로 당신이야』『나는 모르는일』

  • 입력 1998년 9월 11일 19시 26분


‘고문을 당한 사람은 있는데 고문을 한 사람은 없었다.’

‘고문기술자’ 이근안(李根安·60)씨 등에 대한 재정신청사건을 담당하는 서울고법 형사2부(재판장 박송하·朴松夏부장판사)는 11일 서울고법 302호 법정에 고문 피해자와 피의자를 출석시켜 대질심문을 벌였다.

신청인측에선 85년 간첩으로 몰려 70여일간 모진 고문을 받은 납북어부 김성학(金聲鶴·48)씨와 김씨의 부인이 나왔다.

‘고문피의자’로는 총 16명 중 이근안씨 등 3명이 빠진 13명의 전현직 경찰관이 출석했다.

김씨와 부인이 재판장을 향해 앉고 그 뒤에 피의자들이 두 줄로 서자 문강배(文康培)주심판사가 심문을 시작했다.

“이근안씨 등에게 고문을 얼마나 당했습니까.” (문판사)

“그들은 나를 영장없이 불법체포한 이후 10여일간은 일절 잠을 재우지 않으면서 6회이상 전기고문을 했습니다.”(김씨)

진술도중 김씨는 악몽같은 고문순간이 떠오르는지 크게 오열했고 부인도 울음을 터뜨렸다.

김씨는 피의자들중 8명을 지목하며 “이근안이 10여분간 고문시범을 보이면 이들이 번갈아가며 물고문과 전기고문, 가혹한 폭행을 반복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나머지 5명은 고문과는 직접적인 관계가 없거나 가담정도가 경미하다고 말했다.

한 경찰관은 억울하다는 듯 외쳤다.

“김성학씨. 저 좀 보세요. 저는 외부출장만 다녔는데 고문을 했다니요.”

재판부는 심문을 종결한 뒤 “조만간 피의자들을 정식재판에 넘길 것인지를 결정하겠다”고 밝혔다.

폐정(閉廷)직후 김씨는 법정을 빠져나가는 한 경찰관을 힘껏 발길질하며 절규했다.

“너희같이 양심없는 인간들을 위해 왜 내가 이 나라에 세금을 내야 한단 말이냐.”

〈부형권기자〉bookum90@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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