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8천만원짜리 과외

  • 입력 1998년 8월 27일 19시 38분


서울 강남의 ‘족집게과외’사건을 지켜보는 서민들은 허탈감을 지울 수 없다. 국제통화기금(IMF)체제를 맞아 학부모 입장에서 자녀를 몇만원짜리 학원에 보내기도 부담스러워진 마당에 한달 최고 8백만원이 드는 고액과외가 여전히 성행하고 있음이 확인됐기 때문이다.

경찰 수사결과 이들이 받았던 과외는 이른바 유명강사가 동원된 족집게과외는 아닌 것으로 판명되고 있다. 그렇다면 진짜 족집게과외는 도대체 얼마짜리나 될까. 그러잖아도 대학입시는 투자한 만큼 거둔다는 소문이 파다하다. 대다수 서민의 답답한 심정을 헤아리고도 남음이 있다.

이번 사건에 관련된 세무공무원 출신의 한 학부모는 11개월치 과외비로 한꺼번에 8천만원을 학원측에 지불했다고 한다. ‘서울대에만 들어가게 해주면 돈은 얼마가 들어도 상관없다’는 부모도 상당수 있었다는 것이 구속된 학원 원장의 진술이다. 이 학원의 한달 과외비는 봉급생활자의 몇달치 월급에 해당하는 것이 예사였다. 학부모 중에는 국회의원 대기업임원 등 사회지도층이 대거 포함되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돈이면 뭐든지 할 수 있다는 물질만능주의와 빗나간 교육열이 지도층에 널리 뿌리내려 있다면 큰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이번 사건에서 또하나 충격적인 것은 고액과외에 현직 교사들이 무더기로 관련된 사실이다. 교사들은 열과 성을 다한 학생지도로 과외를 막아야 할 당사자임에도 학원측의 향응을 받아가며 학생 가운데 부유층 자녀를 골라 고액과외를 소개해주는 역할을 했다. 어떤 교사는 직접 학원강사로 나서기까지 했다. 결국 이번 사건은 과외로 큰 돈을 벌려는 학원과 도덕성이 결여된 교사, 어떤 수단을 쓰든 자녀를 명문대에 보내려는 일부 지도층의 합작품이었던 셈이다.

교육당국은 기회있을 때마다 과외단속을 외치고 있지만 실제로는 손을 놓고 있다는 지적을 면하기 어렵게 됐다. 이번 사건도 과외단속을 통해서가 아니라 학원장과 채무관계에 있는 한 사람의 제보로 수사에 착수하게 됐다고 한다. 교육부는 관련자에 대한 엄중한 처벌은 물론 사회적 균열과 계층간 갈등을 조장하는 고액과외 단속에 적극 나서야 한다. 그간 교육부는 불법고액과외를 한 학부모의 명단을 공개하겠다고 여러번 천명했다. 그 약속이 반드시 지켜져야 한다.

새 정부 출범 이후 교육당국은 과외 근절과 교육정상화를 위해 대입 무시험전형 등 다양한 개혁을 시도하고 있다. 아직 가시적 효과는 없지만 근본 취지나 방향은 대체로 긍정적이다. 이번 사건은 교육개혁의 당위성을 입증해 주는 한가지 사례다. 정부는 과외근절대책이 차질없이 추진되도록 더욱 고삐를 조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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