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댐건설 추진「영월 동강」]사라질 「천혜의 비경」

  • 입력 1998년 7월 1일 19시 40분


그물에 걸린 물고기를 밤새 뜯어먹으며 사람들과 함께 살아가는 수달과 배가 빨간 붉은배새매, 그리고 물속의 어름치….

외지인의 접근이 어려울 만큼 천혜의 비경을 간직한 강원도 영월 동강(東江)에는 이런 천연기념물이 곳곳에서 노닐고 있었다.

그러나 이 동강의 허리를 잘라 1백m 높이의 다목적 콘크리트댐을 만든다는 소식이 들려온 뒤 이 곳은 ‘개발’과 ‘보존’을 둘러싼 ‘총성없는 전쟁터’로 바뀌었다. 지난달 28일 찾아간 동강, 겉모습은 한폭의 동양화처럼 고요했지만 속은 개발을 걱정하는 ‘소리없는 아우성’이 온통 가득했다.

강 상류쪽인 정선읍 광하리에 이른 것은 오전 9시경. 하류쪽을 향해 차를 달려 동강을 따라잡아본다.

봉고차 한대가 겨우 지날 수 있는 좁은 길. 강 양편으로 늘어선 태백산맥의 등허리자락이 빚어낸 절경에 감탄사가 절로 나온다.

운치리 귤암리 등을 지나면서 ‘댐’의 그림자를 발견하게 된다.

길옆 고추밭에 빼곡히 심어져 있는 배나무 등 유실수다. 한 그루당 20여만원까지 보상을 해준다는 소식에 몇몇 주민들이 제대로 자라지도 못할 정도로 촘촘하게 나무와 약초를 심어놓았다. 기껏해야 30㎝정도의 간격으로 심어놓은 밭도 눈에 띄었다.

갑작스레 뚝 끊어진 길. 정선군 신동읍 고성리, 강 어귀에는 줄배만 덩그러니 놓여있을 뿐이다.

길가 수풀 사이의 산딸기를 따먹고 강으로 내려선 뒤 고무보트를 타고 물길에 흘러든다.

정선 아리랑의 발원지로도 불리는 동강의 물길이다.

태백산맥의 등허리를 지나는 동강의 빠른 물살에 몸을 맡기고 보니 깍아지른 절벽이 옆으로 다가선다. 산 밑둥을 가로지르며 날아가는 백로를 쫓다보면 눈 앞에는 어느새 흰빛 자갈밭이 펼쳐진다.

정오를 갓 넘길 무렵, 산자락이 막아서는 듯 하다 물줄기가 돌아서면 또다시 절벽이 나서면서 점차로 심해지는 강의 굴곡. 산자락을 굽이굽이 헤집고 흘러내리는 물길의 모양새가 흡사 뱀이 기어가는 듯하다. 동강이 전형적인 사행천(蛇行川)으로 손꼽힌다는 안내인의 설명에 절로 고개가 끄덕여진다.

외지인의 접근이 어려운 지형을 지닌 이 곳은 자연 희귀동식물의 안식처.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수달을 비롯, 까막딱따구리 황조롱이 등이 사람들과 함께 ‘공존’하고 있는 곳이다.

그래서인지 11대째 이 곳에 살고 있는 황찬호(黃燦浩·36)씨는 이 곳을 ‘생태계의 보고’라고 내세우며 댐 건설을 적극 반대하고 있다. 환경연구원 최병진(崔秉進)연구원도 생태계 파괴를 우려, “굳이 댐 건설을 한다면 서식지 마련대책이 시급하다”고 강조할 정도다.

오후 1시경, 연포동 근처에 보트를 멈췄다. 새롭게 발견됐다는 동굴을 확인하기 위해서다.

이미 강을 따라 내려오는 사이 바위산 군데군데에서 시커먼 입구를 드러낸 동굴들이 보였다. 육안으로 확인된 것만 50여개. 바위산에는 산 하나에만 6개의 동굴이 눈에 띄기도 했다.

인근 주민의 도움을 얻어 찾아낸 연포동굴 입구에는 시원한 바람이 연신 불어나왔다. 천연 냉장고나 다름없었다.

안으로 들어서자 넓은 지역과 좁은 지역이 교차되면서 동굴이 이어졌다. 연이어 동굴 천정에서 ‘자란’ 종유석(鍾乳石)이 헬맷 불빛속에모습을드러냈고 작은 석화(石花)도 자태를뽐낸다. 납작 엎드린 채 틈새를 지나가면곧폭 5m, 높이 60m의 ‘광장’이 나타나기도한다. 총길이는 6백50m.

영월댐백지화3개군투쟁위원회의 공동회장인 정동수(丁東洙·61)씨는 이같은 부실조사를 지적하며 “지금껏 석회암지대에 댐을 건설한 적은 없었고 동강은 일제시대부터 동굴이 많고 지반이 불안정해 댐건설을 꺼렸던 곳”이라고 말했다.

다시 한낮의 강한 햇살을 받으며 힘껏 노를 젓는 사이 어느새 보트를 가로막는 어라연. 물길을 따라서만 접근이 가능한 천혜의 절경이자 동강의 백미다.

어라연의 절경에 취해 쉬엄쉬엄 노를 젓다 오른편에 와닿는 세 대의 보트행렬을 맞닥뜨린다. 동강이 래프팅의 명소로 소문나면서 근래 부쩍 늘어난 래프팅(급류타기)행렬이다.

1백여리의 구절장강(九折長江) 탐사가 끝나갈 무렵, 역삼각형 모양의 붉은 깃발이 산봉우리 근처에 매달려 있다. 댐 건설지점임을 알리는 표시다. 눈 돌려 되돌아본 동강은 물부족 해결을 위한 거대한 ‘물가두리 만들기’와 천혜의 자연보존, 그 갈림길에 서 있었다.

〈동강〓김경달기자〉dal@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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