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산물 유통폭리 르포]밭떼기서 소비자까지 4∼6배

  • 입력 1998년 3월 11일 20시 10분


‘밭에서 뽑혀 서울에 닿으면 대여섯배.’ 왜 산지에서 2백60원 하는 배추가 동네 가게에서 1천5백원이 되는 것일까.

감사원의 지난주 농산물 시장 유통과정 조사를 계기로 복잡한 속사정을 동아일보 취재팀이 추적했다.

10일 서울 동작구 흑석동 야채가게. 주부 박모씨(33)는 한참을 망설이다가 1천5백원짜리 배추 한포기를 집어 들었다.

이 배추는 지난달초 유모씨(59·전남 해남군 문내면)가 아들의 대학 등록금 마련을 위해 수집상에게 포기당 2백60원에 ‘밭떼기’로 넘긴 배추.

수집상 강모씨(39·서울 광진구 구의동)는 유씨의 배추를 서울 가락동 농수산물시장에서 중도매상에게 포기당 9백원에 넘겼고 중도매상은 흑석동 도매상에게 1천1백원에 팔았다.

도매상은 소매상에게 1천3백원에 넘겼고 소매상은 박씨에게 2백원을 더 얹어 1천5백원에 팔았다. 5단계를 거치는 동안 한포기값이 5.7배가 뛰었다.

여름에 수확해 저온에 보관했다가 겨울에 출하되는 양파도 마찬가지.

창고업자 최모씨(45)는 지난해 7월 경북 김천시 구성면에서 양파 1천2백자루(1자루·20㎏)를 현지 소개인에 대한 사례비를 포함해 자루당 8천원에 샀다.

최씨는 김천에 있는 자신의 냉동창고에 이 양파를 7개월동안 보관했다가 4일과 5일 이틀동안 가락동농수산물시장에 10㎏에 8천원을 받고 출하했다.

중도매인은 이를 다른 중도매인들에게 8천3백원에 넘겼고 양파는 다음날 새벽 자루당 8천7백원에 서대문구 홍은동 유진상가와 아현시장에 뿌려졌다.

연희동 D청과슈퍼는 유진상가에서 자루당 1만5백원에 양파를 구입해 소비자들에게 ㎏당 1천6백원에 팔았다. 유통과정을 거치면서 양파 가격이 4배가 뛰었다.

무도 크게 다르지 않다. 산지에서 1자루(10∼12개)에 2천원 안팎인 무도 5,6 단계를 거쳐 소비자에게 6천원에 팔린다.

이같은 문제는 단지 복잡한 유통과정때문만은 아니다. 농산물을 사재기해 출하시기를 마음대로 조절하는 도매상들의 ‘장난’도 터무니 없는 가격에 단단히 ‘한몫’한다.

월동 배추의 70%를 생산하는 해남군의 경우 출하기인 12월에서 3월까지 전국에서 수집상 3백여명이 몰려들여 전체 물량의 69%를 싹쓸이한다.

전문가들은 농산물 소비지인 도시 곳곳에 농산물물류센터를 세워 유통단계를 3,4단계로 축소하는 것이 이같은 악순환의 고리를 끊는 첫걸음이라고 지적한다.

해남군 문내농협 김재욱(金在旭·41)상무는 “농민들이 출하 조절능력을 키우고 믿고 살 수 있는 농산물 물류센터가 곳곳에 마련되면 중간상인들의 횡포도 자연히 사라질 것”이라고 말했다.

〈이헌진·선대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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