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도 청년의 편지]『호남사람들 恨이 좀 풀렸습니까』

  • 입력 1997년 12월 20일 20시 03분


김대중(金大中)후보의 대통령 당선이 확정된 19일 한 경상도 네티즌(컴퓨터 통신인)이 영남과 호남의 화합을 호소하는 애절한 글을 PC통신에 띄워 수많은 통신인의 눈길을 모으고 있다. 경남 진해출신이라고 밝힌 김어준씨는 「경상도 문둥이의 편지」를 통해 호남뿐 아니라 영남도 지역감정의 피해자라면서 이제는 「대한민국 대통령」이 된 김대중씨를 함께 감시하고 협력함으로써 「너」와 「나」를 넘어 「우리」가 되자고 호소했다. 그의 편지는 직설적이고 때로는 격하지만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진실로서 지역감정이라는 「환부」를 도려내자고 역설하고 있다. 『공산당도 아닌 것이 한 후보에게 90% 몰표를 던지는 삼류국민들아. 오늘 하루는 드러내놓고 떠들고 감격해하거라』 서두에서 김씨는 오래 전부터 전라도 사람을 이처럼 삼류국민이라고 욕하고 싶었지만 그들을 그렇게 만든 것이 바로 삼류 경상도이기에 자신은 비난할 자격조차 없노라고 고백했다. 그러면서 그는 얼마 전 할아버지 생신 때 모인 친척의 대화를 통해 전라도 못지않은 경상도의 지역정서를 소개했다. 기호2번을 찍겠다는 자신을 무섭게 노려보며 『니 미쳤나』 『김대중은 빨갱이다』 『경상도 통반장도 전부 전라도 사람들이 차지한다더라』며 융단폭격을 퍼붓는 20여명의 친척들. 자신에게 쏟아지는 차가운 눈초리의 「허구성」을 김씨는 이렇게 풀이했다. 『스스로 하고 있는 말이 거짓인줄 알면서도 그들은 경상도를 이용해 정권을 잡고 자기 배만 채워온 자들이 만든 허구를 열심히 되뇌고 있었다. 서민은 단 한번도 누려본 적이 없는 「기득권」을 잃을 것이란 불안감을 그렇게 토해내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김씨는 호남정서의 핵심을 주저없이 거론하며 역사 앞에서 영호남이 하나가 되자고 호소했다. 『내 친구가, 이웃이, 가족이 눈앞에서 죽어갔다면… 아무도 나서지 않는 그 상황에서 김대중만이 그 슬픔을 함께 나눴다면… 이렇게 입장을 바꿔보기도 하지만 전 사실 당신들이 겪었던 차별과 설움을 진정으로 이해하지는 못합니다』 그는 비록 호남사람들만큼 뼈저리게 느끼지는 못하지만 80년 광주민주화운동을 비롯한 지난 역사의 책임이 그들에게 있는 것은 아니라고 단정한다. 「당신들」이 형제를 죽인 것도 아니고 차별을 만들어낸 것도 결코 아니기 때문에. 그러나 김씨는 이제부터는 정말 호남인들이 역사앞에 책임을 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들이 몰표로 밀어준 후보가 마침내 대통령에 당선됐기 때문이다. 『김대중은 이제 당신들만의 대통령이 아니거든요. 김대중은 경상도의 대통령이기도 하거니와 대한민국의 대통령이거든요』 김씨는 끝으로 영남과 호남이 함께 나서 권력의 준엄한 감시자가 되자고 호소한다. 「김대중대통령」이 탄생한 순간부터 호남인들은 훌륭한 대한민국 건설의 선두에 서야 한다면서 경상도 사람보다 더 매서운 권력의 비판자가 되라고 주문한다. 진정 역사를 생각한다면 호남인들이 좀 더 양보하고 땀 한방울이라도 더 흘려야 한다면서. 그러다보면 어느새 경상도와 전라도의 갈등이 끝나고 우리끼리 통일을 이룰 날이 멀지않을 거라며 편지는 끝을 맺었다. 『그렇게 5년이 흐르고 나면 그땐 아무도 당신들을 「당신들」이라고 부르지 않을 겁니다. 「우리들」이라고 부르겠지요. 이것이 우리 모두가 사는 길입니다』 〈윤종구·이 훈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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