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쌍한 것들. 너희들이 무슨 죄가 있다고…』
아침 일찍 찬바람을 맞으며 학교로 향하는 막내아들(12)의 뒷모습을 말없이 바라보는 주부 최모씨(40). 자신도 모르게 또다시 눈시울이 붉어진다. 석 달전부터 생긴 버릇.
지난 10월초였다. 올해 들어 부쩍 자금난이 심해진 남편의 회사에도 부도라는 돌림병이 어김없이 찾아왔다. 7천8백만원어치의 가계수표를 막지 못했다.
거래처로부터 납품대금으로 받은 2억5천만원짜리 어음이 부도로 휴지조각이 돼버린 게 화근이었다.
『17년 동안 큰 욕심 안내고 소박하게 꾸려온 회사가 하루 아침에 이렇게 될줄이야…』
지난 80년 결혼과 동시에 시작한 자동차용품 제조업. 남편의 남다른 열정으로 그동안 따낸 크고 작은 특허만 해도 20여건. 우수중소기업상도 받았고 실적이 좋았던 해에는 매출액이 30억원에 이를 정도였다.
『부도를 낸 중소기업 사장이 자살했다는 보도를 남의 이야기로만 여겼어요』
그러나 막상 최씨에게 똑같은 현실이 닥치고 보니 자살한 사람들의 심정이 헤아려졌다. 하루가 멀다 하고 빚독촉을 하는 사채업자들,불시에 들이닥치는 형사들.
그러나 다행스러운 것은 많은 거래처 사람들이 최씨부부에게 빚걱정 말고 하루빨리 재기하라는 독려를 해주고 있는 것이었다.
그런 배려를 위안 삼아 최씨는 갖은 노력을 기울였다. 전셋집을 내놓았고 친구네집에서 해주는 반찬도 염치없이 받아먹었다. 재기를 위해 모처에서 석달을 하루같이 라면만 먹으며 일하고 있는 남편을 생각하며 설움을 견뎌냈다.
그러나 상황은 좀처럼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단 몇달만이라도 남편이 빚쟁이에게 쫓기지 않고 자유롭게 일할 여건이 됐으면 하는 것이 최씨의 마지막 희망.
『남편이 계속 일할 수만 있다면 제가 대신 감방살이를 해도 좋겠어요』
〈금동근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