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은돈 차단-경제위기 주범』…실명제 51개월 엇갈린 평가

  • 입력 1997년 11월 15일 20시 29분


지난 93년8월12일 대통령 긴급명령으로 발동된 금융실명제는 김영삼(金泳三)대통령의 「5년임기 중 유일한 치적」이라고 평가되기도 했으나 최근 재계와 정치권으로부터 강한 도전을 받고 있다.

국내 금융시장의 동요와 국제수지 적자기조 지속 등 경제의 어려움이 실명제에도 원인이 있으므로 실명제를 당분간 유보하거나 대폭 손질해야한다는 주장이 폭넓게 제기되고 있는 것.

특히 신한국당측의 김대중(金大中)국민회의총재 비자금 폭로를 계기로 예금비밀보장이 제대로 되지않고 있는 것이 드러남에 따라 현행 실명제 운용에 대한 불신감이 증폭됐다.

한편 금융권에서는 『실명제는 지하자금의 도피처를 만들면서 불안해했던 과거로부터 우리를 해방시킨 제도』라는 평가도 만만찮다.

한국은행측은 『실명제 실시로 상당 부분의 지하금융이 제도금융권으로 들어가 산업자금화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재계는 『지하경제 규모는 95년말 현재 30조∼40조원으로 추정되는데 이 자금이 실명제 실시 이후 대부분 잘 움직이지 않고 있다』며 『자금흐름이 막혀 기업들이 만성적 자금과수요에 시달리고 있다』고 주장한다.

▼지하자금은 숨어 있는가〓지난 6월말 현재 금융기관 예금의 실명 확인율은 99.4%이며 가명예금의 실명 전환율은 98.8%.

그러나 실명예금 중 실명 미확인 금액이 2조6천억원으로 추계되고 있다.

실명제가 출범 당시부터 다른 사람의 이름을 빌려서 하는 「차명(借名)거래」에 대해선 아무런 장치가 없었기 때문에 금융권 안에 있지만 사실상 숨어 있는 돈이다.

한편 완전 비실명 예금은 지난 6월말 현재 3백40억원에 그치고 있다. 이 때문에 『실명제는 절대다수의 소액 금융거래 고객만 귀찮게 한다』는 불평을 낳았다.

실명제 실시 후 현금선호 경향이 나타난 것도 부정할 수 없는 것으로 지적됐다.

▼기업은 실명제 때문에 어려운가〓재계는 실명제 때문에 과소비풍조가 만연해 작년에는 민간저축률이 23.7%로 하락할 정도로 저축에 대한 관심이 낮아졌다며 결국 이 때문에 최근의 경제위기가 촉발된 것이라고 주장한다.

사채금리가 급상승했고 지하경제가 더 복잡해져 이용하기 어려워졌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이것이 결국 원가상승 요인으로 작용하고 기업들의 대외 경쟁력을 약화시켰다는 것.

이에 대해 재정경제원과 한국은행은 『과거처럼 음성적인 자금조성과 활용이 용이해진다고 해서 기업의 어려움이 해소되는 것은 아니다』고 반박한다.

▼실명제가 안고 있는 과제〓정부는 실명제가 성공하기 위한 실명확인과 실명전환에 대해서만 힘을 기울였지 「예금에 대한 철저한 비밀보장」에 대해선 소홀히 해왔다.

필요할 땐 개인의 예금정보를 들춰보며 선별적으로 공개해버렸기 때문에 실명제의 근본 취지를 뒤흔드는 결과를 스스로 초래한 것.

한편 재경원은 『실명제 대체입법에서 지하자금의 양성화 차원으로 중소기업이나 벤처기업에 투자하는 돈에 대해서는 도강세(渡江稅)만 물리고 자금출처를 묻지 않기로 보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재계 등에서는 정부의 실명제 대체입법안이 통과됐다 하더라도 그것만으로 지하자금을 산업자금으로 충분히 끌어내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주장한다.

〈윤희상·이희성·이용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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