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窓]신석호/『내 돈갖고 도박하는데…』

  • 입력 1997년 9월 23일 19시 55분


23일 오전 서울지법 317호 법정의 피고인석에 미국 라스베이거스 미라지호텔 한국인 마케팅 담당자 최로라씨(42·여)가 모습을 드러냈다. 최씨의 혐의는 미국에서 한국인들에게 거액의 카지노 도박자금을 빌려주고 국내에서 원화로 돌려받은 돈을 8차례에 걸쳐 환치기 수법으로 미국에 송금해 외국환관리법을 위반했다는 것. 최씨는 오랜 미국생활로 어색해진 한국말로 혐의를 모두 시인했다. 최씨는 『직장인으로서 호텔이 고객들에게 빌려준 돈을 받아오는 임무에 충실했을 뿐』이라며 『모국의 실정법을 위반해 물의를 일으킨데 대해 깊이 반성하고 있다』고 말했다. 가난 때문에 21세의 어린 나이에 미국에 건너가 청소부 등 밑바닥 인생부터 열심히 살아왔다는 최씨. 그녀는 『엄마가 구속돼 열네살짜리 아들이 미국에서 혼자 고생하고 있다』며 눈물을 흘렸다. 검찰은 최씨에게 징역 3년에 7천여만원 몰수와 4억8천여만원 추징을 구형했다. 이날 법정에는 최씨의 변호를 맡은 조모변호사 등 6명의 변호인이 대거 출석, 눈길을 끌었다. 변호인들은 『이번 사건은 도박이 자유로운 미국과 그렇지 않은 한국의 법문화 차이에서 비롯된 것』이라며 『미국 사람들은 카지노를 우리나라의 경마 정도로 생각하고 즐긴다』고 주장했다. 공판이 끝난 뒤 변호인들은 더욱 솔직해졌다. 정모변호사는 『요즘같은 개방화 세상에 자기돈 가지고 도박하는데 왜 국가가 간섭하느냐』며 『낡은 법은 없어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80년대에는 해외여행을 규제했지만 지금 생각하면 그것이 얼마나 멍청한 것이었는지 알 수 있다』며 흥분하기까지 했다. 이를 지켜본 한 방청객은 『돈 있는 사람들이나 좋아할 말』이라며 『나라경제가 휘청이는 마당에 외국 도박장에서 하룻밤에 수십억원씩을 날리는 도박을 합법화하라는 것이냐』며 불만을 터뜨렸다. 〈신석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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