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학생들 『돌아가봐야 자리도 없고…』 현지정착 늘어난다

  • 입력 1997년 8월 23일 20시 46분


외국에 유학을 떠났던 학생들이 경기침체의 장기화로 국내에서 일자리를 구하는 것이 어려워지자 보수가 괜찮고 근무 여건이 좋은 현지에서 직장을 구하는 경우가 늘어나고 있다. 유학을 마친 뒤 귀국해 국내기업에 취직했다가 국내 기업문화에 적응하지 못해 다시 미국으로 떠나는 사람들도 상당수에 이르고 있다. 수년간 자유스러운 서구문화에 젖어있다가 국내로 돌아와 주변 사람들의 간섭이나 비합리적인 직장문화에 적응하지 못하기 때문. 미국 뉴욕 브루클린 아트스쿨에서 장식미술학으로 석사학위를 받고 귀국해 국내의 모 인테리어사에 다니던 왕모씨(27·여)는 최근 회사를 그만두고 다시 미국으로 건너가 직장을 잡았다. 왕씨는 『직장 동료들이 대학동문끼리만 뭉쳐 다니는 바람에 유학파는 소외되고 고압적인 직장 상사와 끊임없이 마찰이 생겨 미국에서 직장생활을 하기로 생각을 바꾸었다』고 말했다. 유학생들이 귀국을 꺼리는 또 다른 이유는 현지 대학에서 학위를 받으면 국내에 비해 쉽게 일자리를 구할 수 있고 많은 보수와 좋은 근무환경을 보장받을 수 있기 때문. 더구나 해외 명문대에서 학위를 받을 경우 현지 회사들의 스카우트 대상이 되기도 해 「돌아오지 않는 유학생」의 수가 더욱 늘어나고 있다. 지난해 미국 컬럼비아대 경영대학원을 졸업한 강모씨(31)는 귀국을 포기하고 부인과 함께 영주권을 받아 현지 유명 컨설팅회사에 다니고 있다. 강씨는 『국내 회사에 비해 연봉이 높고 여러가지 대출혜택을 받을 수 있어 비교적 여유로운 생활을 할 수 있다』며 『국내로 돌아가야 할 특별한 이유가 생기지 않는 한 귀국할 계획이 없다』고 밝혔다. 미국 필라델피아 프렛스쿨에서 서양미술을 전공한 뒤 귀국해 국내 유명화랑에 취업한 유모씨(28·여·서울 서대문구 아현동)는 『부모의 외국생활에 대한 반대와 결혼문제만 없었더라면 현지에서 일자리를 구했을 것』이라며 『최근 졸업한 10명 중 나만 귀국했다』고 말했다. 〈박정훈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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