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黃비서 북경 뜨던날]한밤 번개작전…34일드라마 일단락

  • 입력 1997년 3월 18일 07시 59분


[북경〓황의봉마닐라〓정동우특파원] <북경> 17일 밤에 단행된 黃長燁(황장엽)북한노동당비서의 북경 한국대사관영사부 출발은 한중 양국간에 짜여진 정교한 시나리오에 따라 전격적으로 이루어졌다. ○…17일 오후 7시(현지시간·한국시간 8시). 어두워진 시간에 2명이 한조를 이룬 사복공안 2개조가 영사부에서 동쪽으로 빠지는 출구에 배치됐고 이곳에서 20여m 떨어진 동삼환로(東三還路)의 육교위에도 공안 1명이 배치되는 모습이 눈에 띄었다. 긴박감이 감돌았다. 오후 7시40분경 공안 오토바이 4대가 영사부에서 고속도로로 통하는 편도 7차로인 동삼환로에 진입하는 길목에 배치됐고 그중 2대가 남쪽 방면으로 앞서 달려가는 모습이 목격됐다. 또 여기에서 1백50m 남쪽의 동삼환로에서도 오토바이 3대와 공안차량 1대가 목격됐다. ○…오후 8시 정각. 대기중이던 오토바이들이 동삼환로의 남쪽 방향 7차로를 갑자기 일렬로 가로 막고 차량통행을 금지했다. 거의 동시에 영사부 남쪽 골목을 통해 흰색 마이크로버스가 빠져나왔다. 버스는 곧바로 동쪽으로 방향을 바꾼 뒤 시속 80㎞이상의 속력으로 동삼환로 길목에 도착했다. 다급해진 기자가 버스 앞에서 황비서의 탑승여부를 확인하려 했으나 진한 유리선팅과 강한 불빛에 눈이 부셔 6,7명이 탑승했다는 사실만 가까스로 확인할 수 있었다. 그중 몇명은 머리를 깊게 숙이고 있었다. 마이크로버스는 공안 차량과 오토바이의 경호속에 자전거 및 저속차량 주행로인 길가 3개 차로를 가로질러 고속차로인 4차로에 곧바로 진입했다. 동삼환로에 올라선 뒤 시속 1백㎞ 이상의 속도로 남쪽 방향으로 질주했으며 그로부터 7분뒤 공안차량과 오토바이는 모두 철수했다. 지난달 12일 망명신청을 한 뒤 장장 34일을 끈 황비서 망명드라마의 1막이 끝나는 순간이었다. ○…황비서가 떠난 뒤 영사부 건물 주변은 종전과 마찬가지로 중국공안병력이 그대로 경비를 서는 등 별다른 변화가 없는 모습. 비상근무중인 대사관도 전화를 일절 받지 않는 등 황비서의 이동사실을 철저히 비밀에 부쳤다. ○…황비서의 출국이 막바지에 지연된 것은 韓中(한중)간에 출국절차에 관련된 협의가 미진했기 때문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 망명협상의 과정을 살펴보면 사소한 것처럼 보이는 문제에서 시간을 끌어온 전례가 있었다는 것. 핵심 쟁점사항이었던 제삼국행의 원칙과 기간 행선지 등이 비교적 빨리 매듭지어졌으나 출국에 따른 호송 및 경호관련 사항이 합의가 안돼 협상타결이 상당기간 지연된 게 좋은 사례다. 영사부를 나설 때 어떤 차량을 이용할 것인가, 비행장 진입과 기내탑승 및 경호는 어느측이 주도할 것인가 하는 문제들에서 의외로 중국측으로부터 브레이크가 걸려왔다는 것이다. <마닐라> 북한 黃長燁(황장엽)노동당비서가 한국으로 가기 전 중간 체류지로 머무를 것으로 알려진 필리핀의 한국대사관은 17일 李長春(이장춘)대사가 하루종일 자리를 비워 황비서의 도착이 임박한 것 같은 분위기. ○…이대사는 황비서의 중간 체류지로 필리핀이 선택될 가능성이 가장 높다는 보도가 나온 지난 2,3일동안 자신의 행선지를 대외비에 부치고 있어 황비서의 필리핀행과 관련이 있다는 추측을 낳고 있다. 마닐라시 마카티가(街) 퍼시픽스타 빌딩 10층에 자리잡은 한국대사관은 이대사 외에는 20여명의 일반 직원들이 평소와 같이 자리를 지키고 있어 외형적으로는 평상시와 다름없는 모습. ○…필리핀 한국대사관의 한 관계자는 황비서가 필리핀에 올 경우 체류지로 미국 해군기지였던 수비크만이 유력하다는 보도와 관련, 수비크만보다 더 안전하고 편리한 군 시설이 많이 있음을 시사해 눈길. 이 관계자에 따르면 마닐라 시내에도 마닐라공항 인근에 빌 아로르 공군기지가 있어 만약 황비서가 중국의 군용기편으로 올 경우 이 기지에 착륙한 후 기지내의 안전시설에서 그대로 지낼 수도 있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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