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웃이 본 이한영 피격순간]바닥-벽 곳곳 핏자국

  • 입력 1997년 2월 16일 19시 53분


이한영씨가 저격되는 순간을 생생히 지켜본 눈들이 있었다. 이씨는 15일 오후 9시45분경 경기 성남시 분당구 서현동 현대아파트 418동 1402호 현관밖에서 2명의 괴한에게 총탄을 맞았다. 이 때 맞은 편 1402호에 살고 있는 박종은씨(46)는 현관 밖에서 티격태격하는 소리를 듣고 처음에는 부부싸움하는 소리인 줄 알고 참견하지 않으려고 했다. 그러나 남자들끼리 다투는 소리가 들려 이상하게 여기고 현관문에 붙어있는 렌즈를 통해 밖을 내다보았다. 사람이 있으면 열감지 장치에 의해 자동으로 켜지는 등이 있어 밖은 환한 편이었다. 박씨의 눈에 권총을 든 한 남자의 뒷모습이 들어왔다. 이 남자는 1402호의 문앞에 서있는 이씨에게 권총을 겨누고 있었다. 그 옆에는 역시 바바리코트를 입은 다른 한 남자가 서 있었다. 박씨 쪽을 보고 있는 이씨의 표정은 얼어 붙어 있었다. 박씨는 즉시 전화로 112와 119에 신고하고 돌아와 다시 밖을 내다보았다. 총을 들고 있던 남자가 권총에 소음기를 장착하는 것이 보였다. 이때 이씨가 계단쪽으로 황급히 도망치려 했다. 그 순간 총을 든 남자가 이씨의 머리에 총탄을 두발 쏘았다. 이씨가 외마디 비명과 함께 바닥에 쓰러졌다. 마치 영화속의 한 장면 같았다. 이씨가 쓰러지자 괴한 두명은 계단을 통해 달아나기 시작했다. 쓰러진 이씨는 1402호 쪽으로 기어가 문을 두번 치며 『간첩 간첩』이라고 두번 소리를 쳤다. 이씨가 손가락 두개를 필사적으로 펴보이는 모습도 눈에 들어왔다. 박씨는 『당시 속옷만 입고 있어 나가지 못했다』며 『괴한들은 등을 돌리고 있어 그들의 얼굴을 확인하지는 못했다』고 말했다. 같은 동에 살고 있는 한 50대 남자는 이씨가 피격된 직후 현장에 도착했다. 그는 이날 부인과 함께 평소 친분이 있어 1401호에 왔다가 이씨가 바닥에 쓰러져 있는 것을 우연히 봤다. 이들 부부가 엘리베이터를 타고 14층에 내리자 문앞에 이씨가 쓰러져 있었다. 이씨의 귓바퀴에는 피가 흥건했다. 바닥과 벽에도 군데군데 핏자국이 있었다. 이씨의 머리는 뇌가 밖으로 나온 채 참혹한 모습을 하고 있어 소름이 끼쳤다. 그러나 아직 의식은 잃지 않았다. 1402호에 살고 있는 남상화씨가 건네준 휴지로 귀를 닦고 있을 정도였다. 입을 놀려 무슨 말인가 애써 하려 했으나 무슨 말인지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이씨의 주변에는 초콜릿과 꽃바구니가 바닥에 뒹굴고 있었다. 밸런타인데이 선물로 이씨가 사온 것이었다. 〈이명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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