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한영 피격/왜 그를 노렸나]황장엽겨냥 경고 메시지

  • 입력 1997년 2월 16일 19시 53분


[이병기 기자] 북한은 왜 이한영씨를 테러의 표적으로 삼았을까. 북한전문가들과 귀순자들은 북한이 이씨를 테러한 데는 고도의 계산이 깔려 있는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사실 정부는 북한 노동당 황장엽비서 망명사건 이후 북한이 한국보다는 외국에서 테러를 자행할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했다. 이에 따라 재외 공관원이나 해외현지 기업인들의 안전에 신경을 곤두세웠다. 그러나 북한은 당국의 허를 찌르고 대담하게 한국 내에서의 테러를 감행했다. 전문가들은 이에 대해 황비서 망명사건이 전 세계적으로 관심을 모으고있는 이때 북한이 제삼국에서 테러를 할 경우 국제적인 고립과 비난이 클 것이란 점을 감안, 범행장소를 한국으로 선택했을 것으로 보고 있다. 그렇다면 북한은 왜 유독 이씨를 테러대상으로 삼았을까. 전문가들은 북한이 김정일의 전처 조카인 이씨를 처치함으로써 △황장엽비서 일행 △한국정부와 국민 △북한의 지도층 인사 모두에게 강력한 경고를 보낸 것으로 해석하고 있다. 우선 황비서에게 심리적인 압박감을 주려는 의도다. 「한국으로 가더라도 신변이 결코 안전하지 않고 우리가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해칠 수 있다」는 것을 알리려는 목적이 엿보인다는 것이다. 이씨는 평양의 김정일관저에서 함께 생활하면서 알게 된 북한 권력층의 치부를 폭로, 김정일의 신경을 자극해왔다. 결국 북한은 황비서에게 이씨의 꼴이 될 수 있음을 경고한 셈이다. 북한은 또 이번 테러를 통해 한국정부에 『백배 천배 보복하겠다』는 북한의 협박이 결코 빈말이 아니고 언제든지 행동으로 옮길 수 있다는 것을 실제로 보여줄 필요가 있었을 것이다. 「한국정부가 황비서를 한국으로 데려가 얻는 것 만큼 잃는 것도 많을 것」이라는 협박성 메시지가 담겨있다는 것. 이와 함께 북한은 한국내에 불안감을 심어줘 황비서의 한국망명에 부정적인 여론이 형성되기를 기대했을 수 있다. 통일원의 한 고위관계자는 『성혜랑씨 망명사건으로 한국이 시끄럽고 북한이 보복을 들먹일 때 국내에서 「굳이 성씨를 한국으로 데려와 남북관계를 악화시키고 정세를 불안하게 할 필요가 있느냐. 제삼국으로 망명하는게 더 낫지 않느냐」는 여론이 형성된 적이 있다』며 『북한이 이번 사건에서도 한국에 불안심리를 불러 일으키겠다는 의도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또 이씨에 대한 테러는 북한내부 지도층 인사의 동요를 막고 이들에게 「만약 김정일을 배신할 경우 어떻게 된다」는 것을 시범적으로 보여준다는 목적도 담겨있는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북한이 귀순자에 대해 남한에서 테러를 가한 것은 한국전쟁이후 처음 있는 일이다. 일부 전문가들은 특히 2월16일 김정일의 생일을 맞아 황비서 망명사건으로 축제를 망쳐버린 북한으로서는 이번 테러로 분위기를 바꾸고 동요를 막기 위한 계산이 들어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그동안 귀순자 중에서 김정일을 가장 자극해온 이씨를 제거함으로써 최근 심기가 좋지 않은 김정일에게 「생일선물」을 한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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