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국에 띄우는 편지]美뉴저지주 교량설계국장 박성호씨

입력 1997-01-06 20:12수정 2009-09-27 0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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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4년 성수대교 붕괴사고는 온 국민에게 충격이었지만 저에게는 고국을 또한번 방문할 기회를 주었습니다. 당시 서울시의 요청으로 서울에 갔을 때 서울시 교량책임자들로부터 2등교의 교체에 대해 질문받은 기억이 있습니다. 당시는 사고로 수많은 무고한 인명이 희생됐기에 교량 및 건물에 대한 안전문제가 초미의 관심사로 대두됐고 철저한 안전관리를 주장하며 낡은 교량의 전면적인 교체가 많이 이야기됐습니다. 그때 느꼈던 생각은 우리가 너무 조급하지 않으냐는 것입니다. 사실 최근 교량설계기준을 총중량 45t으로 강화한 미국도 새로운 기준을 신설교량이나 기존교량을 보강할 때만 적용할 뿐 기존의 모든 교량을 새기준에 맞춰 교체하지는 않습니다. 오래전 제가 교량 설계부서에서 일을 시작한 지 얼마되지 않았을 때 겪었던 일입니다. 그때 저는 교량교체를 위한 공청회에 나가 실무책임자로서 기술적인 문제를 그 지역 주의원들 앞에서 설명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며칠 뒤 주정부 차관이 저를 불러 한 말은 이국생활 수십년을 한번에 되돌아보게 했습니다. 비록 이민 1세대로 초기를 제외하고 그전까지 영어에 별 어려움이 없었는데 주의원들이 저더러 『영어에 신경을 써야 할 것 같다』는 말을 했다는 것입니다. 물론 저는 엔지니어로서 나름대로 제가 갖고 있는 공학지식과 경험을 소중히 해 왔습니다. 하지만 그날 일로 제가 언어를 비롯해서 사회적인 면에서 부족하다는 것을 새삼스레 깨달았습니다. 그후로 기술적인 문제에서는 잘 훈련된 엔지니어 직원들을 발탁했고 대외적인 문제를 해결해야 할 때는 정치 사회적으로 능력있는 직원들에게 일을 맡겨왔습니다. 만약 주의원이 저를 갈아치울 입장에 있어 저를 쫓아냈다면 저의 기술과 경험은 아마 오늘날 미국 뉴저지주 교량들의 건설과 유지에 쓰일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렇게 됐을 경우 저의 손해이기도 하지만 뉴저지주의 손해이기도 했겠지요. 저에게 계속해서 기회를 준 차관의 판단은 옳았다고 생각합니다. 기술이 모자란다고 또 대외적인 문제해결에 미숙하다고 곧바로 직원을 갈아치우고 새사람을 그 자리에 앉히는 것이 능사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교량교체문제도 마찬가지입니다. 기존 교량을 모두 철거해버리고 1등교로 새로 교체하더라도 언젠가 새로운 규정이 생기면 이들 교량들도 다시 2등교로 전락하고 맙니다. 능력있는 기술자를 훈련시키고 기술을 개발하는데 노력과 인내를 가집시다. 또 모든 국민이 안심하고 교량을 이용할 수 있도록 합리적인 교량유지관리체계를 만들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 박성호씨(58)는 30년 이상 미국에 살고 있는 재미교포로서 현재 뉴저지주 교량설계국장으로 있으며 성수대교 사고직후인 94년 11월 귀국해 한강교량의 안전진단에 대해 자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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