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럼’ ‘복덕방’ 간판 떼고 부활하는 지구당… “불법자금 유입 우려”

  • 동아일보

22년만에 지역위원장 사무실 허용
‘차떼기’로 폐지뒤 편법 운영하다… 여야 법개정에 사무소 개소 움직임
“검은돈 유혹에 노출되기 쉬워”… ‘지방의원들 사병화’ 우려도 커져

20일 서울 강북구의 국민의힘 시·구의원 합동사무실. 교차로에 위치한 4층 건물의 3층 창문에는 여러 시·구의원들의 연락처가, 대로변을 마주한 벽면엔 해당 지역구 당협(지역)위원장의 얼굴 사진과 이름이 담긴 대형 현수막이 2개 층에 걸쳐 걸려 있었다. ‘돈 선거’의 구심점으로 지목돼 2004년 지구당이 폐지된 뒤 별도 사무실을 둘 수 없었던 원외 위원장들이 시·구의원들과 함께 합동사무소를 이용하는 식으로 꼼수 운영을 해온 것.

여야가 18일 새벽 정당법 개정안을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시키면서 앞으론 원외 위원장도 현역 의원처럼 별도의 사무소를 열 수 있게 됐다. 원외 위원장들의 편법 사무소를 양성화한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지만 이번 개정이 사실상 ‘지구당의 부활’로 이어질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시·구의원 등 지방의원의 공천에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해온 위원장들이 지방의원들을 사병(私兵)화하거나 오히려 사무소 운영비 조달을 위해 불법 정치자금의 유혹에 노출될 여지가 커졌다는 우려도 늘고 있다.

● ‘포럼’, ‘복덕방’ 간판 떼고 부활하는 지구당

이날 찾은 서울 서남권의 한 5층 건물엔 ‘더불어민주당 OOO구의원 합동사무소’라는 명판이 걸려 있었다. 이 지역 민주당 구의원들은 2024년 7월부터 지난달까지 100m²(약 30평) 남짓한 이 공간에서 사무소를 공동 운영했다. 6·3 지방선거 레이스가 본격화된 현재 이곳은 한 서울시의원 예비후보 선거사무소로 쓰이고 있다. 이전까지는 공인중개사 자격증을 보유한 이 지역 원외 위원장이 같은 사무실에서 자신의 이름을 앞에 건 ‘△△△복덕방’을 간판으로 내걸었다.

그동안 원외 위원장들은 카페 등을 전전하며 회의를 하거나, 겉으로는 ‘XX포럼’, ‘변호사 사무소’ 등 사무실을 열고 이를 지역 사무소로 편법 운영했다. 이렇다 보니 국회의원을 배출하지 못한 원외 지역·당협위원장들은 지구당 폐지가 현역 국회의원들에게 ‘기울어진 운동장’으로 작동한다는 불만이 많았다.

여야가 정당법 개정으로 지역 사무소 개소를 허용하기로 하자 원외 위원장들을 중심으로 벌써 지역·당협위원회 사무소를 개소하려는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 지방선거를 앞두고 한시적으로 합법 운영할 수 있는 정당선거사무소를 꾸렸지만 지방선거가 끝나면 원외 위원장들의 사무실 개소가 이어질 것이라는 얘기다. 수도권의 한 원외 위원장은 “그동안 사무실이 없어 주로 시의회에서 행사를 했는데 이제 사무실을 알아볼 예정”이라고 말했다.

다만 지구당의 부작용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여전히 높다. 과거 지구당은 후원금을 매개로 지역 유력 인사들이 위원장과 유착해 이권을 챙기고, 위원장은 선거조직 관리에 악용한다는 지적을 받아 왔다. 지구당은 한나라당(현 국민의힘)이 2002년 대선 당시 2t 트럭을 동원해 기업으로부터 현금 823억여 원을 수수한 뒤 전국 지구당에 살포한 ‘차떼기 사건’이 불거지면서 2004년 정치개혁의 일환으로 폐지됐다.

지구당 폐지 22년 만에 정당법을 개정해 지역 사무소 개소를 허용하기로 한 것은 17일 국회 본회의를 앞둔 민주당과 국민의힘의 전격 합의에 따른 것이다. 이를 두고 6·3 지방선거와 차기 대선·총선을 앞두고 지역 조직을 키우기 위한 거대 양당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진 결과라는 분석이 나온다.

● 운영비 등 ‘검은돈’ 유혹 노출은 여전

양당은 정당법 개정으로 사무소가 허용되더라도 옛 지구당과 달리 후원금 모금은 허용하지 않는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하지만 정치권과 학계에선 지방의원들의 사병화는 물론이고 사무실 운영을 위한 불법 정치자금의 유입 가능성을 키울 여지가 커졌다는 분석이 나온다. 한 민주당 소속 전남도의원은 “투명한 운영비 지원 장치 없이 사무실만 열어주면 결국 지역 토호들의 검은돈이나 불법 자금의 유혹에 노출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국민의힘에선 최근 당권파와 친한(친한동훈)계의 갈등 속에 지역 사무소의 자금 조달 문제가 수면 위로 드러나기도 했다. 서울 마포구의원들은 지난달 당권파인 조정훈 의원(마포갑)이 지역 시·구의원들로부터 지역 사무실 운영비 등을 명목으로 매달 회비를 걷었다며 ‘공천 헌금’ 의혹을 제기했다. 그러자 당권파 기초의원들은 친한(친한동훈)계 배현진 서울시당위원장(서울 송파을)도 당협 운영위원들에게 유사한 명목으로 매달 회비를 걷었다며 맞불을 놨다.

선거 제도의 근간을 흔드는 사안인데도 여야 정개특위 합의와 법안 심사, 본회의 처리를 하루 만에 기습 처리한 점도 문제로 지적된다. 이선우 전북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거대 양당이 싸울 때는 사생결단으로 싸우더니 양당 이익에 부합하니깐 공론화 없이 빠른 속도로 합의해서 통과시킨 것도 바람직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원외 위원장#정당법 개정#지구당 부활#시·구의원#지방선거#지역 사무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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