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3 비상계엄 이후 윤석열 대통령 탄핵 정국이 두 달째 이어지면서 정치적 양극화가 심화되고 있다. 주말인8, 9일에는 서울과 대구, 광주 등에서 잇따라 대규모 탄핵 찬반 집회가 열리는 등 비상계엄 사태 이후 국민 여론이 통합과 수렴으로 나아가는 대신 양쪽으로 갈라져 사회 갈등이 장기화되고 있는 것. 극심한 사회적 갈등과 분열이 이어지는 가운데 국내 중견 정치학자들이 참여하는 싱크탱크인 동아시아연구원(EAI)은 비상계엄 사태 이후 한국의 정치 양극화에 대한 첫 인식 조사를 진행했다.
10일 동아일보가 입수한 EAI의 조사결과(한국리서치가 1월 22∼23일 전국 성인 1514명에게 패널 중 무작위추출 방식 웹 조사로 진행했으며 응답률은 27.4%, 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 ±2.52%포인트)에 따르면 ‘국민의힘이 매우 싫다(호감도 100 중 10 미만)’고 응답한 더불어민주당 지지자는 69.0%, ‘민주당이 매우 싫다’고 답한 국민의힘 지지자는 58.8%였다.
EAI가 2021년 조사한 결과와 비교했을 때 ‘국민의힘이 매우 싫다’는 민주당 지지자(40.8%)는 28.2%포인트, ‘민주당이 매우 싫다’는 국민의힘 지지자(50.5%)는 8.3%포인트 늘어났다. 자신의지지 정당과 경쟁하는 정당에 대한 극단적인 비호감 정서가 크게 높아진 것이다.
실제로 국민의힘이 비호감이라고 밝힌 전체 응답자의 60.6%는 ‘(국민의힘이) 역겹다. 정치권에서 안 봤으면 좋겠다’고 답했다. 또 민주당이 비호감이라고 답변한 이들 중 44%는 ‘(민주당이) 역겹다. 정치권에서 안 봤으면 좋겠다’고 했다.
‘1년 뒤 한국 정치권 갈등이 심화될 것이라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동의한 응답자는 57.8%였으며 완화될 것이라는 답변은 19.7%에 그쳤다.
헌법재판소가 윤 대통령을 탄핵해야 한다는데 ‘동의한다’고 밝힌 응답자는 64.9%였던 반면에 반대한다는 응답은 23.1%에 그쳤다.
손열 EAI 원장(연세대 국제학대학원 교수)은 “민주주의 후퇴 이면에는 심각한 정치 양극화가 자리하고 있다”며 “심화된 정파적 양극화에 가려진 다수 중도의 목소리를 끌어내고 대변할 수 있는 정치개혁이 필요하다”고 진단했다.
‘국힘-민주 싫다’ 응답자의 절반 가량 “역겹다, 정치권서 안봤으면”
[정치인식 양극화 조사] 계엄사태 속 정치 양극화 심화 “양당 이념적 극단” 4년새 크게 늘어…응답자 57.8% “1년뒤 갈등 커질 것” 본인 정치성향엔 46%가 “중도” 최다…“정파적 양극화에 대립 관계만 강조”
계엄과 탄핵 정국을 거치면서 국민의힘과 더불어민주당 등 ‘거대 양당’에 대한 비호감도가 크게 올라간 것으로 나타났다. 지지 정당에 관계없이 ‘국민의힘을 좋아하지 않는다’(0∼100점 중 50점 미만)는 응답은 68.8%였고, ‘더불어민주당을 좋아하지 않는다’는 응답은 54.1%로 모두 과반이었다. 4년 전에 비해 비호감도는 국민의힘 21.0%포인트, 민주당이 10.4%포인트 늘어난 것.
특히 양당을 좋아하지 않는다고 밝힌 응답자의 절반가량이 ‘역겹다. 정치권에서 안 봤으면 한다’고 강한 적대감을 표출한 것으로 조사됐다. 정치 양극화 심화와 정치 불신의 확산으로 상대 정당을 악마화하는 혐오 정서가 크게 확산되고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 “거대 양당 둘 다 싫다”
동아시아연구원(EAI)의 ‘2025년 양극화 인식조사’에 따르면 정당에 대한 호오도 조사(0∼100 사이. 0은 대단히 싫어한다, 100은 대단히 좋아한다는 의미)에서 ‘국민의힘을 좋아하지 않는다’는 응답은 68.8%였다.
특히 국민의힘에 대한 부정적 평가자에게 “어느 쪽이 귀하의 입장을 잘 표현한다고 생각하느냐”고 질문했을 땐 “역겹다. 정치권에서 안 봤으면 한다”고 더 강한 불호를 표현한 사람은 60.6%였고, “분노를 일으킨다. 잘못하고 있음을 따지고 싶다”고 한 사람이 39.4%였다. 강한 불호는 50대(63.2%), 광주·전라(68.8%), 진보(75.0%)에서 높았다.
‘민주당을 좋아하지 않는다’(54.1%)고 답한 사람 중 “분노를 일으킨다. 잘못하고 있음을 따지고 싶다”고 한 사람은 56.0%, “역겹다. 정치권에서 안 봤으면 한다”는 44.0%였다. 강한 불호는 연령대별로 70세 이상에서 70.4%로 가장 높았고, 지역별로는 대구·경북(52.0%), 대전·세종·충청(51.5%)에서 절반을 넘었다.
● “1년 뒤 정치 갈등 심화될 것” 57.8%
응답자들은 거대 양당이 4년 전에 비해 이념적으로 극단화되고 있다고도 평가했다. ‘국민의힘이 이념적으로 진보와 보수 중 어디에 속하는지를 0∼10(0은 매우 진보, 10은 매우 보수)으로 평가해달라’는 질문에 73.8%가 ‘보수’(6∼10)라고 응답했다. ‘중도’(5)라는 답은 15.8%, ‘진보’(0∼4)라는 응답은 10.4%였다. 2021년 같은 조사에선 ‘보수’라는 응답이 65.5%였고, 이어 중도 15.9%, 진보 10.2% 순이었다.
민주당에 대한 같은 질문에 68.9%가 ‘진보’라고 했다. ‘중도’는 18.5%였고, ‘보수’는 12.6%였다. 4년 전에 비해 ‘진보’라는 응답은 14.4%포인트 늘었고, 중도라는 응답은 2.6%포인트 줄었다.
스스로는 어디에 속한다고 생각하느냐고 묻는 질문엔 ‘중도’(46.3%)가 가장 높았으며 진보(27.1%)와 보수(26.7%)는 오차범위 내로 나타났다. 절반가량의 응답자가 스스로를 중도로 평가하고 있는 가운데 거대 양당은 이념적으로 더욱 양극화되고 있다고 본 셈이다.
이에 따라 ‘1년 후 정치권 갈등이 심화될 것’이라고 답한 응답자는 57.8%에 달했다. ‘변화 없을 것’이라는 응답은 22.5%, ‘완화될 것’이라고 답한 이들은 19.7%였다. 정치 갈등이 심화될 것이라는 응답은 연령과 이념에 무관하게 모두 과반이었다.
강원택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는 “정파적 양극화로 인해 과도하게 보수와 진보라는 두 개의 대립적 관계만 강조되고 있다”며 “중도층에 주목해 인식의 ‘유사함’이나 태도의 ‘타협 가능함’에 주목해야 한다”고 했다.
:: 동아시아연구원(EAI) :: 주요 국가적 현안 및 사회 이슈에 대한 정책 대안을 제시하는 비영리 민간 싱크탱크로 2002년 설립됐다. 민주주의 인식과 외교 안보 분야 등과 관련한 정례 조사를 진행하고 있다. 하영선 서울대 명예교수가 이사장을, 손열 연세대 국제대학원 교수가 원장, 강원택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가 민주주의연구센터장을 맡고 있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