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小동해’ 표기 古지도 받은 김정숙 여사 “헝가리 신부가 본 조선, 현실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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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1년 11월 4일 11시 3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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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 부인 김정숙 여사 (청와대 제공) 2021.10.31/뉴스1
문재인 대통령 부인 김정숙 여사 (청와대 제공) 2021.10.31/뉴스1

“여기에 한국이 있네요. 정말로 희귀한 건데 이렇게 주셔서 고맙습니다.”

문재인 대통령과 함께 헝가리를 국빈 방문 중인 김정숙 여사는 3일(현지시간) 헝가리 국가기록원이 소장하던 고지도를 전달받으며 이같이 말했다. 김 여사는 한반도 동쪽 바다를 ‘소동해’(小東海, MARE ORIENTALE MINVS)라고 표기한 이 고지도를 유심히 들여다보기도 했다.

1730년에 독일에서 제작된 이 고지도는 18세기 유럽에서도 한반도 동쪽 바다가 ‘동해’로 인식되고 있었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단적인 증거다. 헝가리 국가기록원에 따르면 이 지도는 가장 많이 존재하는 1739년판이 아닌, 초기본인 1730년판으로 그 희소성과 가치가 더 높다.

김 여사는 답례로 헝가리 국가기록원에 세종장헌대왕실록(세종실록) 복제본을 선물로 전달했다. 이날 행사에서 한국 국가기록원 관계자는 한지를 이용한 전통기법으로 세종실록의 능화무늬 표지를 제본하는 과정을 시연했다.

처버 써보 헝가리 국가기록원장이 세종실록 복제본 선물에 “뷰티풀”이라며 기뻐하자 김 여사는 “이렇게 직접 (만들어서) 드리니까 저도 굉장히 뿌듯하다”며 “기록원의 중요성이 실질적으로 느껴지기도 한다”고 말했다.

헝가리 국가기록원 (페이스북 갈무리) © 뉴스1
헝가리 국가기록원 (페이스북 갈무리) © 뉴스1


김 여사가 방문한 헝가리 국가기록원은 1756년 유럽 최초 기록보존소로 설립돼 현재 약 3000㎞에 달하는 방대한 문서를 보존·관리하고 있다. 소장 기록에는 17세기 이후 우리나라 관련 기록이 다수 있으며, 한국 국가기록원은 1989년 헝가리와 수교 이후 해당 기록 7만여건을 수집했었다.

이날 헝가리 국가기록원에서는 한국 국가기록원과 헝가리 국가기록원 간 기록관리 협력을 위한 양해각서(MOU) 체결식이 열렸다. 양국 국가기록원 간 MOU는 Δ기록 사본 제공 협조 Δ전문가 조사·연구 및 인적 교류 지원 Δ출판 및 전시 공동행사 기획·추진 등을 골자로 한다.

양국 국가기록원장은 MOU 서명식 이후 1900년대 초 조선에서 선교활동을 했던 버이 삐떼르((Vay Péter) 헝가리 신부의 기록을 한국어와 헝가리어로 번갈아 낭독하는 시간을 가졌다. 삐떼르 신부는 1902년 고종 황제를 알현한 최초의 헝가리인으로 당시 조선의 문화와 민초들의 생활, 커지는 일본의 영향을 우려하는 글을 일기와 에세이(수필), 기행문 형태로 남긴 인물이다.

버이 삐떼르 헝가리 신부 (청와대 제공) © 뉴스1
버이 삐떼르 헝가리 신부 (청와대 제공) © 뉴스1


삐떼르 신부의 일기 중에는 ‘조선은 쇠퇴하고 있었지만 조선인들은 여전히 품위를 간직하고 있었습니다’, ‘어떤 무력과 가혹함에도 조선인들은 결코 무너지지 않았습니다’, ‘지금 일본의 조치들은 조선 민족의 자존심을 일깨우는 자극이 될 수 있습니다’ 등 조선에 대한 우호적인 시선이 담긴 구절들이 자주 등장한다.

김 여사는 그 가운데 “파리, 베를린,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아시아로 출발하는 급행열차들이 모두 부산으로 향합니다. 오늘날 부산은 실제로 ‘테르미누스’(terminus), 즉 유럽과 아시아를 잇는 머나먼 여정의 종착지입니다”라는 발췌문을 직접 낭독하기도 했다.

김 여사는 “마치 100년 후의 한국 국민들께 보내는 편지 같은 글”이라며 “분단 이후 단절된 남과 북의 철도를 연결하고, 한국과 러시아, 유럽을 잇고자 하는 오늘 대한민국의 구상을 완벽하게 예견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이어 “가장 암울했던 시기의 조선에서 버이 삐떼르 신부가 내다본 조선의 미래는 현실이 됐다. 대한민국 국민은 굴곡의 역사 속에서 꿈을 현실로 바꿔냈다”고 말했다.

김 여사는 “기록 보존 기술과 인적 교류를 통해 한국과 헝가리 양국의 국가기록원이 동서양 기록의 보고가 되기를 기대한다”며 “오늘의 기록이 100년 후 두 나라의 후손들에게 뜻깊은 역사로 기억되기를 바란다”고 덧붙였다.

앞서 김 여사는 이날 오전 헤르체그 어니떠 헝가리 대통령 영부인과 함께 헝가리 부다페스트에 있는 에이펠 아트 스튜디오를 방문하기도 했다. 에이펠 아트 스튜디오는 19세기 말 철도 역사를 거쳐 기차 수리 공장으로 사용됐던 건물로 문화단지 재생사업을 통해 헝가리 국립오페라단의 아트센터로 재개관했다.

김 여사는 건물 곳곳에서 눈에 띄는 이끼정원과 관련, 화산폭발 후 가장 먼저 생기는 식물이 이끼라는 설명을 듣고 “재생과 희망의 상징인 이끼가 더 아름답게 느껴진다”고 말했다.

김 여사는 또 “한국에도 에이펠 아트 스튜디오 같은 도시재생 공간이 있다”며 “한국에서 가장 오래된 철도건물인 서울역사를 개조한 ‘문화역 서울284’ 역시 리모델링으로 도시의 역사와 문화가 함께 숨쉬는 공간이 됐다”고 소개했다.

이날 김 여사를 위해 에이펠 아트 스튜디오 측에서는 피아노로 애국가를 연주했다. 한국인 연주자인 정호승 수석첼리스트와 이유림 국립발레단 솔리스트가 김 여사를 직접 영접하자 김 여사는 “헝가리 오신 지 얼마나 됐나”라고 질문을 던지기도 했다.

김 여사는 또 헝가리 국립오페라단 단원들과 정호승 첼리스트의 협연으로 우리 가곡 ‘향수’가 연주될 때는 중간에 눈을 감고 몸을 좌우로 살짝 흔들며 감상하는 모습을 보였다.

김 여사는 한국과 헝가리 모두 분단과 국경폐쇄 등으로 이산을 겪은 아픔이 있다며 헤르체그 여사에게 한반도 평화를 위한 비세그라드(V4, 헝가리·체코·슬로바키아·폴란드)의 지지를 당부했다.

(부다페스트=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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