文대통령, 北 총격-美 무관심에도 ‘종전 카드’… 野 “끝없는 집착”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10월 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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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름만에 종전선언 다시 제안
文 “종전선언, 한반도 평화의 시작, 남북협력-국제사회 적극 동참 희망”
北 노동당 창건일-美 대선 앞두고 ‘대화 재개 위해 필요’ 판단한 듯
野 “국민 총살당했는데 종전 타령”…방일 폼페이오는 北언급 한번 안해
與 “엄중한 시기일수록 추진해야”

“어렵게 이룬 진전과 성과를 되돌릴 수는 없으며 목적지를 바꿀 수도 없다.”

문재인 대통령은 8일 한미 교류를 위한 비영리단체 코리아소사이어티 화상 연례 만찬 기조연설에서 이같이 말하며 종전선언을 거듭 제안했다. 지난달 23일 유엔 총회 연설에 이어 15일 만이자 6일 북한군에게 피살된 해양수산부 공무원 이모 씨(47) 아들에게 “나도 마음이 아프다”고 위로한 지 이틀 만이다. 종전선언 카드로 경색된 남북관계를 돌파하겠다는 의지를 나타낸 것이지만 북한이 공동 조사에 대한 응답이 없는 상황에서 북한 달래기에만 공을 들이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 北 무응답에도 “마음 열고 소통할 것”
문 대통령은 이날 연설에서 “종전선언이야말로 한반도 평화의 시작이며, 한반도의 항구적 평화만이 참전용사들의 희생과 헌신에 진정으로 보답하는 길”이라고 말했다. 이어 문 대통령은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의 실질적인 진전이 있었지만 지금은 대화를 멈춘 채 호흡을 가다듬고 있다”며 “한반도 종전선언을 위해 양국이 협력하고 국제사회의 적극적인 동참을 이끌게 되길 희망한다”고 했다. 한미 친선을 위한 비영리단체인 코리아소사이어티 연설을 통해 유엔 총회 연설에서 제안한 종전선언 구상에 미국이 함께해 달라고 당부한 것이다.

문 대통령은 북한과의 소통도 거듭 강조했다. 문 대통령은 “존 F 케네디 (전 미국) 대통령은 ‘평화는 의견을 조금씩 나누고 바꿔 가며 장벽을 서서히 무너뜨리고, 조용히 새로운 구조를 세워 가는 일일·주간·월간 단위의 과정’이라고 했다”며 “북한과도 마음을 열고 소통하고 이해하며 신뢰 구축을 위한 노력을 지속해 갈 것”이라고 했다.

공무원 피살 사건으로 북한에 대한 여론이 악화된 상황에서 문 대통령이 종전선언 카드를 또다시 내민 것은 10일 북한 노동당 창건일과 11월 미 대선 등의 일정을 고려한 것으로 풀이된다. 여권에선 노동당 창건일 직후 북한이 미 대선 이후 대응 기조를 결정하는 숙의 과정에 들어갈 것으로 보고 있다. 김여정 북한 노동당 제1부부장이 7월 담화에서 “조미(북-미) 협상의 기본 주제가 이제는 ‘적대시 철회 대 조미 협상 재개’의 틀로 고쳐져야 한다”고 밝힌 만큼 비핵화 대화 재개를 위해선 종전선언이 필요하다는 것이 청와대의 판단이다. 청와대 관계자는 “이번 연설은 미 대선 전에 사실상 마지막으로 종전선언에 대한 강력한 의지를 밝힐 기회였다”고 말했다.

○ 野 “끝없는 집착 두려울 정도”
하지만 공무원 피살 사건의 파장이 이어지고 있고 북한이 공동 조사 요구에 비협조로 일관하면서 진상 규명이 미궁으로 빠져들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는 가운데 종전선언 제안은 부적절했다는 비판이 나온다. 특히 피살 사건 직후였던 유엔 총회 연설 때와 달리 이번 화상 연설은 피살 사건의 논란이 한창인 6일 코리아소사이어티에 전달됐다.

유승민 전 미래통합당(국민의힘 전신) 의원은 이날 페이스북에 “비핵화는 실종된 지 오래고 우리 국민이 총살당하고 불태워져도 대통령의 머릿속에는 종전선언과 가짜 평화밖에 없다”며 “정권을 교체해서 역사의 법정에서 이들의 죄를 반드시 물어야 한다”고 했다. 국민의힘 윤희석 대변인도 “북한, 평화, 종전을 향한 대통령의 끝없는 집착에 슬픔을 넘어 두려움마저 느낀다”고 했다. 반면 더불어민주당 허영 대변인은 “종전선언은 우리 국민의 생명과 안전 위협을 제거할 가장 강력한 수단”이라며 “엄중한 시기일수록 종전선언 추진을 포기해선 안 된다”고 했다.

미국 등 국제사회의 무관심 속에 종전선언이 성사될 가능성이 높지 않은 상황에서 종전선언을 남북관계 재개를 위한 카드로 활용하려는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미 국무부 자료에 따르면 한국 방문을 연기하고 ‘쿼드’ 회담 등을 위해 일본을 찾은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은 북한에 대한 언급은 단 한 번도 하지 않았다. 미국이 미중 갈등 대처에 전력을 쏟으면서 정책 우선순위에서 북한 문제가 뒤로 밀렸다는 것이다. 위성락 전 주러시아 대사는 “미국이 ‘종전선언’에 부여하는 가치가 최근 들어 많이 변했는데 정부가 이를 인식하고 있는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박효목 tree624@donga.com·박민우·한기재 기자
#종전선언#한반도#평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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