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우리 국민 사살하고 불태우는데…軍은 왜 지켜만 봤나?

박태근 기자 입력 2020-09-24 15:22수정 2020-09-24 1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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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종 공무원 발견 정황 포착 후 피살까지 軍 6시간 방치 논란
軍 “북한이 바로 사살하고 불태울 거라고 상상 못했다”
“알았으면 우리 군이 가만히 있었지 않았을 것”

북한이 소연평도 인근 해상에서 실종된 해양수산부 어업지도 공무원선 A 씨에게 총을 쏘고, 시신을 불태운 사건과 관련, 우리 군이 상황을 멀리서 지켜 보기만 하고 구조 노력을 기울이지 않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24일 국방부에 따르면, A 씨는 21일 오전 11시30분경 소연평도 해상에서 실종된 뒤 30여시간이 지난 22일 오후 9시 40분경 북측 해역에서 피격 사망했다.

A 씨는 22일 오후 3시 30분경 등산곶 인근에서 구명조끼를 입고 부유물을 타고 표류하다 기진맥진한 상태로 북측 선박과 만났고, 약 6시간 후 북한 단속정이 쏜 총을 맞고 사망했다. 북한은 시신에 기름을 붓고 불태웠고 그날 10시 11분경 우리 관측장비에 시신을 태우는 불빛이 포착됐다. 북한은 시신을 수습하지 않고 해상에 버려뒀다.

이날 국방부 브리핑에서 출입 기자단은 이미 사건에 대해 여러 차례 브리핑을 요구했는데 거절당했다며 유감을 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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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은 “(총격 전후 상황을)계속 감시하고 있었다”고 했지만, 이날 비로소 사건을 공식 공개한 것에 대해선 “관련 첩보에 대해서 정밀 분석 중이었다”고 해명했다.

군 관계자는 “발표 못 한 건 (정보) 10개가 종합되면 10개를 분석해야 한다. 1개 분석 안 하고 발표하면 뒤집어야 할 수도 있기 때문”이라며 “시간이 걸렸고 지금 발표하게 된 것”이라고 답했다.

이날 군이 발표한 설명을 종합해보면 사건 일지는 다음과 같다.

<21일 월요일>
▲ 낮 11시 30분경 실종 사실 인지.
▲ 오후 1시경 상부에 통보.
▲ 오후 1시 50분 해경 해군 20척, 항공기 투입해 정밀 수색.
▲ 오후 6시 부터 대연평도, 소연평도 해안선 일대 정밀 수색.

<22일 화요일>
▲ 오후 3시 30분경 북한 수상사업소 선박이 등산곶 일대 해상에서 구명조끼를 입은 상태에서 1명 정도 탈 수 있는 부유물에 탑승한 기진맥진 상태 실종자 최초 발견 정황 입수.
▲ 밤 9시경 사살 상부지시 (추정)
▲ 밤 9시 40분경 총격
▲ 밤 10시 11분경 연평도에서 불빛 관측 (시신 불태우는 장면으로 추정)


<23일 수요일>
▲ 오후 4시 35분경 UN과 협의해 대북 문의 발송 했으나 지금까지 북측 답 없음.



사망한 공무원 A 씨가 탑승한 어업지도선 무궁화 10호. (사진=서해어업지도관리단)


군 관계자는 이날 브리핑에서 “북한이 밤 9시 40분경에 A 씨에게 총격했다”고 설명하면서 “계속 감시하고 있었다”고 답했다.

하지만 6시간 동안 대응하지 않은 이유에 대해선 “사건이 우리 해역이 아닌 북한 해역에서 일어났다. 북한 해역 안에서 일어난 사건에 대해서 즉각 조처를 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당시엔 (발견된 사람이) 실종 인원인지 아닌지 북측 인원으로 판단하는 건지 확인할 수 없었다. 나중에 종합해보니 그림이 그려진 것이다”고 해명했다.

A 씨가 실종되고 하루 뒤 인근 북한 해역에서 사람이 발견되는 일이 있으면, 당연히 조치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취지로 묻자 “단정할 수 없었다”고 답했다.

취재진이 ‘수색하면서 NLL을 넘어갔을 가능성 있는데, 북한에 연락하는 조치도 안 했냐?’라고 묻자, 군 관계자는 “확실한 첩보가 아니라 안 했다”고 말했다.

국민이 실종됐는데, 하루가 넘도록 다양한 첩보를 입수해놓고 죽음에 이르기까지 사실상 방조했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이에 군은 “그렇게까지 나가리라고 예상 못 했다. 바로 사살하고 불태울 거라고 상상도 못 했다”며 “사살할 거라고 알았으면 우리 군이 가만히 있었지 않았을 것이다”고 말했다.

또 23일까지도 사건을 기자단에 밝히지 않은 이유에 대해선 “정보분석이 종료되지 않았기 때문에 설명할 수 없었다. 관련 첩보에 대해 정밀 분석 중이었다”고 답했다.

표류할때 왜 식별 못 했는지에 대해서도 “병력이 투입돼도 쉽지 않은 부분이다”며 “인원 상태가 물에 떴다고 특정할 수도 없다. 해상에서의 실종 인원에 대한 수색 작전은 쉽지 않은 작전”이라고 해명했다.

자진 월북으로 추정하고, 기진맥진이라는 표현까지 썼는데, 어떻게 당시 상황을 구체적으로 파악했는지’에 대해서는 “말씀 드릴 수 없다. 출처는 밝힐 수 없다”고 답했다.

박태근 동아닷컴 기자 pt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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