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법·공정거래법·금융그룹감독법 등 ‘경제 3법’에 대한 재계의 우려를 전달받은 여야 대표가 경제계의 의견을 듣는 절차를 밟겠다고 약속했다. 코로나19(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사태로 전례없는 위기에 봉착한 경제계 입장을 입법 과정에서 충분히 들어달라는 재계의 요청을 받고서다.
박용만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은 22일 국회를 찾아 여야 대표를 잇달아 만난 자리에서 ‘경제 3법’에 대한 우려를 표명했다.
박 회장은 이날 오후 국회에서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만나 “기업은 생사가 갈리는 어려운 지경에 처해 있는데 기업을 옥죄는 법안은 자꾸 늘어나고 있어 걱정이 늘어나는 것이 사실”이라고 우려를 표명했다.
그러면서 “여야가 합의하면 (경제 3법이) 일사천리로 가는 것 아닌가 하는 걱정이 많이 된다”며 “문제점과 보완점을 터놓고 얘기할 수 있는 토론의 장을 마련해주시면 얘기가 진전되지 않을까 한다”고 우선 경제계 의견 수렴 절차를 밟아달라고 호소했다.
박 회장은 “토론의 장이 없는 절차상 문제가 있다”며 “지금은 한 템포 늦춰서 문제점들을 자세히 들여다봤으면 하는 바람”이라고 했다. 급히 추진하기 보다는 경제계를 비롯한 각계의 의견을 수렴하는 것이 선행돼야 한다는 판단에서다.
이에 이낙연 대표는 “공정경제 3법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당연히 경제계 의견을 듣는 과정을 거치겠다는 약속을 드린다”며 “야당과도 충분한 대화를 할 용의가 있다”고 말했다.
다만 “경제계도 우리가 나아갈 방향은 분명하다는 것에 동의하실 것이라 믿는다”며 “그 방향으로 어떻게 성공적으로 나갈지 방법을 만드는 데 경제계의 지혜가 필요하다”고 당부했다.
민주당은 박 회장의 건의에 따라 한정애 당 정책위의장을 통해 경제계 의견을 수렴하는 공청회 등을 검토하기로 했다.
신영대 민주당 대변인은 회동 후 기자들과 만나 “경제계의 어려움이나 정책과제에 있어 한정애 당 정책위의장이 적극적으로 의견을 수렴하는 창구역할을 하라고 (이 대표가 말했다)”면서 “필요하면 공청회 등도 검토할 수 있다”고 언급했다.
이에 앞서 박 회장은 김종인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과도 만나 경제계 의견을 전달했다. 김 위원장 역시 너무 걱정하지 말라는 뜻을 전하며 경제계 의견을 수렴하겠다고 약속했다.
김 위원장은 기자들과 만나 “박 회장이 경제3법에 대해서 경제인으로서 나름대로의 우려가 있다는 말을 해 내가 한국 경제에 큰 손실이 올 수 있는 법을 만들겠냐고 말하며 너무 걱정하지 마시라고 했다”며 “경제3법은 적절한 심의 과정을 거쳐서 할 테니 걱정하지 말라는 이야기를 전했다”고 밝혔다.
김 위원장은 ‘과거 경제민주화 법안을 추진할 때도 일부 반대가 있었다’는 말에 “내가 사실 박근혜 전 대통령 후보 시절에 경제민주화 공약을 만든 사람인데 그때 만든 공약은 지금보다 강하게 만든 점이 있었다”며 “그러니까 기업인이 우려하는 것과 일반 상식에서 판단하는 게 다 다를 수 있으니 어느 정도 접합점을 찾으면 되지 않나 생각한다”고 답했다.
당내에서 반대 목소리가 있다는 것에 대해서는 “솔직히 이야기해 각자가 정확하게 파악해서 이야기하는 건지, 그냥 일방적으로 밖에서 듣는 이야기를 바탕으로 말하는 건지 사실 잘 모르겠다”고 말했다.
한편 지난달 25일 국무회의를 통과해 국회에 제출된 ‘경제 3법’ 중 공정거래법 개정안은 사익편취 규제대상 확대, 공정거래위원회 전속고발권 폐지 등을 골자로 한다.
상법 개정안은 다중대표 소송제도 도입, 감사위원 분리 선임 및 대주주 3% 의결권 제한 등이 담겼다.
금융그룹감독법 제정안은 ‘금융자산 5조원 이상의 복합금융그룹’ 중 금융지주, 국책은행 등을 제외한 금융그룹을 감독대상으로 지정한다는 내용이다. 재계는 법 통과시 우리 기업들이 투기자본과 글로벌 경쟁사의 먹잇감이 될 것이라며 반발하고 있다.
특히 재계는 기업의 자유로운 경영활동 보장과 규제 완화 정책을 핵심 기조로 삼아 온 보수 정당의 대표가 이번 법안들에 찬성하고 있다는 점에 서운함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이날 김 위원장을 10분 가량 면담한 박 회장은 굳은 표정으로 말없이 국회를 빠져나갔다.
국민의힘 내부에서는 당헌·당규 개정을 통해 경제민주화를 채택한 만큼 일부 수정은 불가피하다는 총론에는 동의하지만, 시간을 갖고 학계와 재계, 시민단체 등의 의견을 들어 결정해야 한다는 신중론이 나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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