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 전 말레이 공항에서 김정남 얼굴에 화학무기 발라 살해한 2인조 중 1명
베트남 출신 피고인 측 “왜 1명만 석방이냐”…기소 취하와 석방 사유는 비공개
로이터 “김정남은 중국 망명 후 북한 독재 정권 꾸준히 비판하다가 살해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이복형인 김정남을 2년 전 말레이시아에서 치명적 화학무기를 써서 살해한 혐의로 구금 중이던 여성 피의자 2명 중 인도네시아 출신 시티 아이샤(27)가 11일(현지 시간) 오전 풀려났다. 말레이시아 검찰의 기소 취하에 따른 것으로 미국 CNN방송은 “피의자마저 ‘충격 받았다(shocked)’고 밝힌 석방 결정”이라고 전했다.
이날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 교외의 샤 알람 고등법원에서 열린 공판에서 무함마드 이스칸다르 아흐마드 검사는 “아이샤에 대한 살인 혐의 기소를 취하한다”고 말했다. 재판부는 이에 따라 사건을 종결하고 아이샤를 즉시 석방했다. 아이샤 측 구이 순 셍 변호사는 “무죄 선고를 내려 달라”고 요청했으나 재판부는 이를 거부하고 “증거가 명백한 사건이므로 추후 새로운 증거가 제시되면 다시 피의자로 소환될 수 있다”고 밝혔다.
로이터통신은 “피의자석에 앉아 석방 결정을 들은 아이샤는 함께 기소됐던 베트남 출신 피의자 도안티흐엉(31)을 잠시 끌어안고 흐느꼈다”고 보도했다. 아이샤와 함께 사형을 구형받았던 흐엉의 변호사는 휴정을 요청하고 “공범으로 기소된 두 피의자 중 1명만 석방된 까닭이 궁금하다. 흐엉에 대한 기소도 취하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아흐마드 검사는 “이번 기소 취하 결정은 몇몇 ‘항의(representation)’에 근거해 결정된 것이다. 더 자세한 내용은 공개할 수 없다”고 밝혔다. 인도네시아와 베트남 정부는 “두 피의자는 사건 현장에서 도주한 북한인 용의자 4명에게 이용된 희생양일 뿐”이라며 말레이시아 정부를 압박해 왔다.
미소를 지으며 법원을 나선 아이샤는 기자들에게 “오늘 석방되리라 기대하지 않았다. 매우 행복하다”고 소감을 밝힌 뒤 인도네시아 대사관이 보낸 차에 올랐다. 아이샤는 대사관에 머물다가 이날 오후 귀국한 것으로 알려졌다.
호텔 마사지사였던 아이샤와 배우로 활동해 왔다고 밝힌 흐엉은 2017년 2월 13일 쿠알라룸푸르 국제공항에서 중국 마카오행 비행기 탑승 수속을 준비하던 김정남의 얼굴에 액체 화학무기인 신경작용제 ‘VX’를 손으로 묻혀 살해한 혐의로 체포됐다. 로이터통신은 “김정남은 마카오로 망명한 뒤 수년간 김정은 일가의 북한 독재 통치에 대해 비판적 견해를 피력했던 인물”이라고 전했다.
2017년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이복형 김정남을 독극물로 암살한 혐의로 체포된
인도네시아 여성 시티 아이샤(가운데)가 11일(현지 시간) 말레이시아 검찰의 기소 취하로 풀려나 샤알람고등법원을 나서고 있다.
시티 아이샤에게 사형을 구형했던 검찰은 갑작스럽게 기소를 취하한 이유를 밝히지 않았다. 쿠알라룸푸르=AP 뉴시스아이샤와 흐엉은 “불쾌한 냄새가 나는 미끄러운 물질이 갑자기 얼굴에 닿은 사람의 반응을 몰래 촬영하는 TV 예능프로그램에 출연하는 것인 줄 알았다”고 진술했다. 변호인들은 “북한 보위성 소속 리재남(59)과 오정길(57), 외무성 소속 리지현(35)과 홍성학(36)이 두 피의자를 속여 VX를 주고 김정남의 얼굴에 바르도록 지시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검찰은 “피의자들은 사건 당시 독극물을 사용하고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있었다”며 김정남을 공격하는 피의자들의 모습이 촬영된 폐쇄회로(CC)TV 영상을 증거로 공개했다. 이런 증거에도 불구하고 검찰의 갑작스러운 기소 취하 결정이 내려졌기 때문에 그 배경에 의문이 남는다.
인터폴(국제형사경찰기구)에 의해 적색 수배된 북한 용의자 4명은 김정남이 살해되고 몇 시간 뒤 쿠알라룸푸르를 떠나 북한으로 입국했다. 북한은 “사건 당일 숨진 인물은 김정남이 아닌 북한인 ‘김철’이며 사인은 심장마비다. 북한인 용의자들은 그가 숨진 시점에 우연히 공항에 있었을 뿐”이라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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