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촛불이 바란건 공정한 사회… 앙갚음으로 흘러선 안돼”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10월 2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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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촛불집회 1년]참가자 10人이 말하는 ‘어제와 내일’

지난해 10월 29일 서울 광화문광장에 촛불 3만 개가 켜졌다. 5주 뒤 촛불은 232만 개로 늘어났다. 23차에 걸친 촛불집회는 올 4월 말 마무리됐다. 한 건의 폭력 사태도 없었다. 광장에 모인 1684만8000명(연인원)은 제자리로 돌아갔다. 촛불 1년, 그들은 한국 사회를 어떻게 보고 있을까.

○ 촛불의 과거보다 미래가 중요

본보는 20∼60대 ‘촛불 시민’ 10명을 만났다. 이들은 지난겨울 평균 5, 6회 광화문광장을 찾았다. 이들은 촛불집회를 ‘일생일대의 경험’으로 기억하고 있었다. 그러면서 앞으로가 더 중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최기원 알바노조 대변인(33)은 “세상이 바뀌었다는 생각은 들지만 아직 ‘최저임금을 준수하라’는 구호는 계속되고 있다”며 “힘없는 사람만 희생하지 않는 나라가 되면 좋겠다”고 말했다. 프리랜서 디자이너 이민주 씨(25·여)는 “정치적 이슈보다 중요한 건 약자를 살리고 돕는 일”이라며 “장애인과 노인, 갑을 문제 등을 해결할 수 있는 사회적 안전망이 마련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급격한 변화나 소통 없는 일방통행식 정치에 대한 거리감도 나타냈다. 영화감독 김재수 씨(59)는 경남 거창과 서울을 오가며 4차례 촛불집회에 참석했다. 그는 오랜 기간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의 피해를 현장에서 느꼈다. 촛불이 제기한 문제에 누구보다 공감했다. 하지만 “(적폐 청산을) 자칫 지나치게 서두르거나 보복성으로 흘러서는 안 된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박헌수 시니어노조 위원장(67)도 “한꺼번에 많이 하려다 보면 실수하기 마련”이라며 “국민 전체가 이익을 보는 방향으로 신중히 생각하고, 상식적으로 추진돼야 한다”고 말했다.

○ 촛불 통해 성숙해진 한국 사회

지난해 이맘때 최주영 씨(28·여·변호사)는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 재학생이었다. 첫 촛불집회는 마침 중간고사 기간이었다. 그는 주말마다 거의 빠짐없이 집회에 참석했다.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이 남다르게 다가왔던 이유다. 최 씨는 “법을 공부하는 사람으로서 ‘탄핵안 인용’은 법조문에만 있는 줄 알았다”며 “현실이 되는 걸 보니 ‘민주주의란 이런 것이구나’라고 실감했다”고 말했다.

촛불시민들은 헌법재판소가 박 전 대통령 탄핵을 결정한 3월 10일을 가장 기억에 남는 날로 꼽았다. 대구에 사는 주부 신은자 씨(47)는 “대통령 탄핵을 보면서 우리나라에서도 바뀌지 않는 건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이렇게 우리가 지적한 문제들이 앞으로 하나둘 고쳐지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간호사 이보람 씨(26·여)는 “병원 내 비정규직 문제를 더 적극적으로 이야기하게 됐다”며 활발해진 ‘소통’을 강조했다. 학원 강사 도민익 씨(41)는 “신고리 5, 6호기 공론화위원회가 숙의 끝에 공사 재개 결정을 내리고, 이를 국민들이 수용한 것이 우리 사회가 지난해보다 소통한다는 가장 큰 근거 아니겠느냐”고 말했다.

실제 촛불집회는 시민들의 관용, 신뢰, 참여의식, 공동체의식 증진에 긍정적 영향을 미쳤다고 한다.

도묘연 영남대 통일문제연구소 연구원이 전국 20∼60대 남녀 1518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다. 도 연구원은 “집회에 참가하지 않은 사람도 간접적으로 시민성이 증진됐다는 결과가 나왔다”며 “촛불집회가 ‘민주주의 실천교육 프로그램’ 역할을 한 것”이라고 분석했다.

김동혁 hack@donga.com·구특교·김예윤 기자
#촛불집회#문재인 정부#탄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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