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최영해]전두환의 ‘경제 대통령’ 사공일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1월 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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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두환 전 대통령이 신년인사회에서 “경제를 잘 아는 사공일 같은 사람이 (대통령을) 한번 했으면 좋겠다”며 “나는 경제를 잘 모르는데 사공일 같은 사람이 잘 받쳐줘 까먹으려고 해도 못 까먹게 했다”고 말했다. 박근혜 대통령을 겨냥해선 “경제를 쥐뿔도 잘 모르는 사람”이라고 직설을 날렸다. 새해 첫날 덕담하는 자리에서 나온 얘기치고는 뼈 있는 말이다.

 ▷사공일은 1982년 한국개발연구원(KDI) 부원장 시절 폴 새뮤얼슨 등 세계적 석학과 KBS에 출연해 대담한 일이 있다. TV를 유심히 보던 전두환은 유창한 영어에 달변인 그가 맘에 들어 경제수석으로 발탁했다. 1983∼1987년 경제수석으로 성장, 물가, 국제수지의 세 마리 토끼를 한꺼번에 잡은 사람이 사공일이다. 대선을 목전에 둔 지금, 누구도 대선 후보로 생각 않는 사공일 세계경제연구원 이사장을 전두환이 대통령감으로 찍은 것이 흥미롭다.

 ▷사실 전두환의 경제 대통령은 따로 있었다. 1983년 10월 버마(미얀마) 아웅산 테러로 순직한 김재익이다. 1980년 신군부 실세로 정권을 잡은 전두환의 고민은 정치나 사회가 아닌 경제였다. 1979년 2차 오일쇼크로 국가 경제가 휘청거릴 때 경제기획원 경제기획국장 출신 김재익을 대통령 옆에 둔 것은 큰 행운이었다. 전두환이 김재익에게 “여러 말 할 것 없어. 경제는 당신이 대통령이야”라고 한 말은 지금도 관가에서 회자(膾炙)된다. 그가 경제수석이 되면서 박정희 시대 때 정부가 주도했던 경제정책은 시장 중심으로 바뀌었고 이후 한동안 ‘단군 이래 최대 호황’을 구가했다.

 ▷김재익이 살아 있었다면 전두환은 그를 경제 대통령으로 먼저 꼽았을지 모른다. 한국 경제의 고도성장 발판을 마련한 김재익과 사공일을 박 대통령과 대기업의 돈 심부름을 한 안종범 전 경제수석과 비교할 수는 없을 것이다. 경제 문제에서만큼은 박 대통령은 입이 열 개라도 전두환의 독설에 할 말 없게 됐다. 사공일 같은 경제 전문가가 이번 대선에 나온다면 어떨지 궁금하다.
 
최영해 논설위원 yhchoi65@donga.com
#전두환#김재익#아웅산 테러#사공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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