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왕실장 김기춘, ‘최순실 국정 농단’에 무슨 역할 했나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11월 19일 00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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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종 전 문화체육관광부 제2차관이 검찰에서 “2013년 9월 차관 취임 초기 김기춘 당시 대통령비서실장이 전화로 ‘만나 보라’고 해서 약속 장소에 나갔더니 최순실 씨가 있었고 이후 최 씨를 여러 번 만났다”고 진술했다고 한다. 김 전 실장과 대통령 비선 실세 최 씨의 관계를 언급하는 진술이 나온 것은 처음이다. 김 전 실장은 지금까지 “비서실장 당시 최 씨 관련 보고를 받은 적이 없고, 최 씨를 만난 일도 통화한 일도 없다”며 “김 전 차관이 그랬다면 정신이 이상한 사람”이라고 주장했다.

 2013년 8월 취임한 김 전 실장은 첫인사로 “윗분의 뜻을 받들어서…”라고 말할 만큼 대통령의 뜻을 받든 ‘왕실장’이다. 김 전 실장이 최 씨를 소개했다는 김 전 차관의 말이 사실이라면, 그는 대통령의 비선 실세 최 씨를 알고 있을 뿐만 아니라 최 씨와 CF감독 차은택 씨의 국정 농단에 김 전 차관이 관여한 사실도 파악하고 있다는 얘기가 된다. 유진룡 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도 언론 인터뷰에서 “김 전 차관이 자기 배후에 김 전 실장이 있다고 말하고 다녔다”고 밝힌 바 있다.

 돌이켜보면 2014년 11월 28일 보도된 ‘청와대 비서실장(김기춘) 교체설 등 VIP 측근 정윤회 동향’ 보고서는 김 전 실장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2014년 1월 이 문건을 보고받은 그는 조응천 당시 공직기강비서관 등을 경질하는 식으로 사건을 덮었고, 보도가 나오자 “조기 종결토록 지도”하라고 지시하는 등 수사에 개입한 정황이 고 김영한 전 대통령민정수석 비망록에서 최근에야 뒤늦게 드러났다. 결국 이 사건은 우병우 민정비서관 등을 통해 ‘청와대 문건 유출 사건’으로 탈바꿈했고 그 바람에 진짜 비선 실세 최 씨의 국정 농단은 날개를 달게 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최 씨와 차 씨가 대통령을 업고 일을 벌일 때 법적·행정적으로 뒷받침해준 공식적 실세가 김 전 실장이었을 거라는 관측이 여권에서도 나온다. 다음 주 김 전 실장을 소환할 방침이라는 검찰 특별수사본부는 그가 왜 어떤 인연으로 최 씨를 김 전 차관에게 소개했고, 최 씨의 국정 농단이 벌어지는 동안 무슨 역할을 했으며 그 대가로 무엇을 얻어냈는지 밝혀야만 한다. 고 김 전 수석의 비망록에서 드러났듯이 김 전 실장의 사법부 길들이기, KBS 인사 개입과 언론 통제 등 대통령 보위를 위해 전방위로 영향력을 행사한 의혹도 수사해야 할 것이다.

 김 전 실장은 1979년 중앙정보부의 ‘최태민 보고서’ 작성 때 중정과 청와대에서 근무하는 등 박정희-박근혜 대통령과 인연이 깊다. 최 씨를 알기에 이번 사태가 터진 후 컨트롤타워를 맡아 수습의 ‘큰 그림’을 그리고 있다는 얘기도 들린다. 부녀(父女) 대통령을 바른 길로 보좌하기는커녕 실정(失政)을 감추고 키우는 일에 매달려 왔다면 이제 김 전 실장은 국민 앞에 석고대죄하는 심정으로 진실을 밝혀야 할 것이다.
#김기춘#최순실 국정 농단#박근혜#차은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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