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청와대, 검찰에 사전협의 없었다는 이유로 압수수색 거부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10월 29일 23시 1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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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와대가 사전협의가 없었다는 이유로 검찰의 압수수색 영장 집행을 거부한 것으로 29일 확인됐다. 청와대가 압수수색을 거부하면서 낸 '불승인 사유서'는 우병우 대통령민정수석비서관의 작품으로 전해졌다.

○"사전협의도 없이 압수수색" 격앙된 청와대

최순실 비리 의혹을 수사 중인 검찰 특별수사본부(본부장 이영렬 서울중앙지검장)는 29일 오후 2시경 안종범 대통령정책조정수석비서관과 정호성 대통령부속비서관의 집무실에 대한 압수수색을 시도했다. 이날 압수수색에는 한웅재 서울중앙지검 형사8부장을 비롯해 검사와 수사관 수십 명이 나섰다.

검찰은 청와대에 대한 압수수색 계획을 법무부에조차 보고하지 않고 비밀로 부쳤다. 압수수색 계획을 보고한 사실이 나중에 알려지면, 청와대에 사실상 수사 진행상황을 보고했다는 논란에 휘말릴 수 있기 때문이다.

검찰은 압수수색 영장을 발부받은 뒤 청와대 경내 진입을 앞둔 시점에서야, 청와대 측에 압수수색 협조를 요청했다. 당황한 청와대는 검찰의 영장 집행에 응하면서도 보안문제를 이유로 임의제출이 원칙이라는 주장을 펴며 검사와 수사관들의 사무실 진입을 막았다. 대신 청와대 직원들이 검찰이 원하는 자료를 건네주겠다고 했다.

하지만 청와대는 이후 검찰 측에 정호성 부속실비서관 등 이번 의혹 핵심관련자들이 사용하는 컴퓨터와 휴대폰을 포함해 대부분의 자료를 보안 문제를 이유로 제출할 수 없다고 밝혔다. 검찰은 청와대가 넘겨준 자료만으로는 수사단서를 찾을 수 없다고 판단해 "직접 사무실에 들어가 영장을 집행하겠다"고 다시 요구했다.

청와대는 이에 반발해 이날 오후 7시경 압수수색 '불승인 사유서'를 검찰에 제출하며 압수수색 집행을 거부했다. 청와대는 불승인 사유서에서 '국가기밀이 있어 압수수색이 불가능하다'는 이유를 댔다. 청와대는 공무상비밀문서와 군사상비밀 문서가 보관된 곳이어서 현행법상 청와대의 승낙 없이는 압수수색을 할 수 없다는 것이다.

불승인 사유서 제출은 검찰로부터 사전에 압수수색 관련 내용을 통보받지 못한 우 수석의 지시로 이뤄졌다고 한다. 한 검찰 관계자는 "우 수석 입장에서는 검찰이 사전협의 없이 압수수색에 나서면서 무시를 당했다고 느꼈을 것"이라고 말했다.

○검찰 '불승인 사유서' 제출 공개에 청와대-검찰 긴장 고조

검찰은 청와대의 조치에 즉각 반발하며 "청와대의 불승인 사유서 제출 때문에 검찰 압수수색이 지장을 받게 됐다. 수긍할 수 없는 조치다"라고 공개적으로 불만을 표했다. 또 여기에 덧붙여 "청와대는 의미없는 자료만 검찰에 제출했다"고 밝혔다.

검찰이 공개적으로 이런 반응을 내놓자 청와대는 외부에는 말을 아끼면서도 내부적으로는 "검찰이 우리에게 이럴 수 있느냐"며 격앙된 반응을 보였다고 한다. 검찰은 오후 9시경 영장 집행에 나섰던 검사와 수사관들을 철수시키며 "30일에 다시 압수수색을 시도하겠다"고 밝혔다. 청와대의 불승인 사유서 제출에 호락호락 물러서지 않겠다는 뜻을 분명히 한 것이다.

검찰이 청와대 압수수색을 시도한 것은 2012년 이명박 전 대통령의 내곡동 사저 특검 이후 4년만이다. 당시에도 검찰은 청와대의 반발로 집무실을 직접 압수수색하지 못했으며 제3의 장소에서 자료를 청와대로 건네받는 형식을 취했다.

검찰은 최 씨 의혹 사건이 청와대 관계자들이 개입된 게이트로 커지자 "외풍에 흔들리지 않겠다"는 뜻을 수차례 밝혔다. 이번 청와대 압수수색은 검찰의 향후 수사방향을 가늠케 하는 대목이다. 검찰 내부에서는 "이번에도 물러서면 검찰은 정권과 함께 몰락할 것"이라는 목소리가 높다.

김준일 기자 ji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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