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 ‘사드 보복’ 외치며 北도발엔 침묵… 韓 “유감” 한마디뿐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8월 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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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중 사드갈등]

《 고고도미사일방어(THAAD·사드) 체계의 한반도 배치 결정에 대한 중국의 반발이 날로 거칠어지고 있다. 중앙 관영매체들이 앞장서 연일 ‘한국 때리기’에 열중하고 있고 지방정부와 공공기관, 민간 기업들도 사드 보복에 동참하고 있다. 공식적으로 보복 조치가 발표되지 않았을 뿐 교묘한 방식으로 보복이 진행되는 것이다. 외교부, 문화체육관광부 등 한국 정부는 아직 구체적으로 확인되지 않았다며 소극적 대응으로 일관하고 있다. 》

 

때리는 중국→ 관영언론 총동원 공세… “사드가 北미사일 구실 줘”

중국 관영언론의 사드 관련 논평과 보도는 이미 도를 넘어섰다. 공산당 기관지가 박근혜 대통령의 실명을 거론해 가며 ‘신중한 판단’을 경고했고, 한국에 대한 보복이 당연한 듯한 분위기를 만들고 있다. 심지어 북한이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결의를 위반하며 미사일을 발사한 것을 사드에 대한 대응으로 간주하는 논평까지 나왔다.

공산당 기관지 런민(人民)일보는 4일 사설 ‘중성(鍾聲)’에서 한국과 미국을 향해 경고 메시지를 던졌다. 이 신문은 중-러 정상이 6월 공동성명에서 사드 배치에 반대 입장을 밝힌 사실을 거론한 뒤 “한미가 중-러의 엄중한 경고의 깊은 뜻을 이해하지 않고 사드 배치를 강행한다면 ‘오만한 조치’가 초래할 후과에 책임을 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중-러는 동북아가 새로운 냉전 상태로 빠져드는 것을 원치 않는다”며 “중-러는 앞으로 한미가 예측하지 못하고 감당할 수 없는 반격 조치로 사드 배치 강행에 대응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관영 환추(環球)시보는 4일 사설에서 “한류 스타가 사드 배치의 희생양이 되더라도 이는 중국 때문이 아니다. 현재 중국에서 한류의 어려움은 한국이 스스로 자초했다”고 주장했다. 신문은 “한국이 사드 배치를 강행한다면 중국 내 한류는 장차 반드시 심하게 훼손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관영 영자지 글로벌타임스는 28만 명이 참가한 중국판 트위터 시나 웨이보(微博)의 여론조사에서 응답자의 86% 이상이 한국 연예인의 방송 출연 금지를 지지했다고 같은 날 전했다.

관영 중국왕(網)의 왕샤오후이 편집장은 이날 평론에서 “사드 배치는 중한 관계에 막대한 상처를 입히고 경제 무역과 관광 분야 또한 막대한 피해가 예상된다”며 “사드 배치는 한국이 자기 집에 폭탄을 두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주장했다.

베이징의 한 소식통은 “3일 북한이 노동미사일을 발사한 것에 대해 중국이 침묵하다시피 할 뿐만 아니라, 마치 사드에 대응하기 위해 발사한 것이라는 논조가 나오는 것에 놀랐다”고 말했다. 중국 외교부는 3일 홈페이지에 일본 방위백서에 대한 비판은 올렸지만 북한 미사일 발사에 대해서는 시종일관 침묵했다. 중국이 북핵과 미사일 발사에 대한 유엔 안보리 제재를 철저히 이행하겠다는 다짐이 무색해졌다는 비판이 나온다.

심지어 북한의 미사일 발사를 사드에 대한 대응으로 해석했다. 왕쥔성(王俊生) 중국사회과학연구원 연구원은 4일 관영 영자지 차이나데일리에 “사드 배치가 북한에 미사일 실험을 할 좋은 구실을 줬다”며 납득하기 어려운 논리를 폈다. 중국 외교부 대변인실도 차이나데일리의 질의에 “모든 당사자는 이 지역의 긴장을 높이거나 서로를 도발하는 행위를 피해야 한다”며 사드와 북한 미사일 발사에 대해 ‘양비론’을 제기했다.

 

손놓은 한국→ “中정부 공식 제재조치 없어”… 충돌 피하기 급급

고고도미사일방어(THAAD·사드) 체계의 한반도 배치를 무산시키기 위한 중국의 한국 압박이 가시화하고 있다. 그런데도 한국 정부는 “사드는 북한 위협에 대처하기 위한 한미 동맹의 자위적 조치”라는 원론적인 대답만 되풀이하고 있다. 노골화하는 중국의 압박 앞에 한국의 당위론은 무기력해 보인다.

정부 당국자는 4일 “사드는 중국의 안보를 위협하지 않는데도 런민(人民)일보가 지역의 전략적 균형과 중국의 안보 이익을 해친다고 주장하는 것은 유감”이라고 말했다. 또 “사드 배치의 근본 원인은 북한 핵·미사일 위협 때문”이라며 “런민일보는 사드가 아니라 핵·미사일 개발을 고집하는 북한에 경고 메시지를 보내야 한다”고 말했다. 전날 이 신문이 “미중러 간 충돌이 발발하면 한국은 첫 타격 대상이 된다”며 “한국 지도자(박근혜 대통령)는 신중하게 판단하라”고 위협한 것에 대한 첫 반응이었다.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조준혁 외교부 대변인은 이날 브리핑에서 런민일보에 대한 질문을 받고 “외국 언론의 반응에 일일이 언급할 필요를 느끼지 않는다”며 답변을 하지 않았다. 중국과의 공개적인 정면충돌을 피하기 위해서다.

정부는 사드로 인해 중국의 한국 관련 정책이 전환된 증거는 보이지 않는다고 밝히고 있다. 윤태용 문화체육관광부 콘텐츠산업실장은 “중국에 진출한 한류 콘텐츠 기획사의 상황을 예의주시하고 있지만 아직 중국 정부의 공식 규제지침은 없어 우리 정부도 대응할 단계는 아니다”고 말했다. 기획재정부, 산업통상자원부도 통상·투자 관련 특이동향이 없고 중국의 무역보복과 관련해 접수된 민원이 없다고 밝혔다. 하지만 중국은 공식 규제를 단행할 때는 유예기간 없이 즉각 실시하는 것이 관례여서 자칫 속절없이 당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특히 사드 관련 중국 조치는 모두 ‘중국 내부를 향해’ 이뤄진다는 점이 과거와의 차이다. 1999년 한중 ‘마늘 분쟁’ 당시 마늘에 조정관세가 부과되자 중국은 한국산 휴대전화와 폴리에틸렌 제품의 수입을 금지했다. 하지만 지금은 △중국방송사의 한국 방송물 방영 자제 △비자 대행 중국 업체의 면허 취소 등 중국인, 중국 업체를 상대로 조치를 취하고 있다. 그만큼 한국이 반박하기 어렵게 접근하고 있다는 것이다.

더구나 사드 국면은 시간이 지난다고 저절로 잦아들지 않을 것이라는 점에서 정부의 대응 방식이 한가로워 보인다는 지적이 나온다. 현재 중국의 공식 요구는 “사드 배치 과정을 중단하라”는 것이다. 한국이 시간 끌기 전략을 쓰면서 버티면 ‘한반도 배치 공식화’를 인정받을 수 있는 게 아니라는 뜻이다.

한 중견 외교관은 “중국의 요구사항은 ‘사드는 논의조차 하지 말라→논의를 하더라도 결론 내지 말라→결론을 냈더라도 행동에 옮기지 말라’로 지속됐다”며 “대국으로서의 체면을 유지하기 위해서라도 중국은 ‘사드 반대’ 주장을 거둘 수 없는 상태”라고 말했다. 사드 체계의 한반도 배치 공식 발표 직전인 6월 말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이 황교안 국무총리를 만나 ‘사드 반대’를 공식화한 만큼 국가적 방침이 된 상태다. 중국을 상대로 적극적인 행동과 외교적 노력을 기울여야만 국면을 바꿀 수 있는 구조여서 새로운 접근법 마련이 요구되고 있다.
 
베이징=구자룡 특파원 bonhong@donga.com
조숭호 shcho@donga.com / 세종=손영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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