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이진]옷차림과 커뮤니케이션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5월 1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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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화 때 인상이 말로 전달된다고 여기지만 그렇지 않다. 한 사람의 이미지가 각인될 때 말의 내용이 차지하는 비중은 고작 7%인 반면 청각 요소는 38%, 시각 요인은 55%나 된다. 칭찬을 늘어놓아도 몸짓이나 복장이 상대의 마음을 파고들지 못하면 비(非)호감을 주게 된다. 1971년 ‘조용한 메시지’에서 앨버트 머레이비언은 이런 내용을 설파했다. 그의 이름을 따 ‘머레이비언의 법칙’으로 통한다.

▷제7차 노동당 대회 폐막 후 첫 현지 지도에서 김정은이 양복을 입었다. 인민복이 아니라 양복을 입고 시찰한 건 처음이다. 북한 주민들에게 김일성 시대의 향수를 떠올려 권위를 강화하려는 ‘패션 정치’인 셈이다. 아쿠아스큐텀 같은 영국 명품을 즐겨 입던 마거릿 대처 전 영국 총리는 “옷을 잘 입는 것은 국가가 나에게 부여한 아주 중요한 임무”라며 옷차림이 백 마디 말보다 더 나은 ‘정치 소통’임을 강조했다.

▷영국의 한 컨설팅 기업은 안내담당으로 채용한 27세 여성이 하이힐 대신 단화를 고집하자 출근 첫날 바로 해고했다. 신발도 마음대로 신지 못하게 하나… 항변하는 이들도 적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로펌에 근무하는 변호사는 아무리 더운 여름에도 긴팔 와이셔츠에 넥타이가 필수다. 때와 장소와 경우에 맞는 옷이 따로 있고, 규율이 엄격한 직장에 다니거나 전문직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정장 차림으로 권위의 차별화를 꾀한다. 옷을 못 입는 쪽보다 잘 입는 사람의 말에 더 귀를 기울이는 경향을 보이는 건 동서양이 마찬가지다.

▷박근혜 대통령은 13일 여야 3당 원내대표를 만났을 때 분홍색 재킷을 입었다. 굳은 의지를 내비치기 위해 종종 입던 카키색 ‘전투복’과 달리 부드러움과 따스함을 풍겼다. 협치를 염두에 두고 야당 지도부에 열린 마음을 보여주려 한 듯하다. 더불어민주당 우상호 원내대표는 새누리의 빨강과 더민주의 파랑이 교차하는 넥타이로 협력 의사를 내비쳤다. 옷차림만으로도 소통의 문턱을 한결 낮출 수 있긴 하다. 그러나 옷차림보다는 결국 진심이라야 벽을 넘어 통하고 다른 사람을 움직인다.
 
이진 논설위원 leej@donga.com
#김정은#양복#하이힐#분홍색#박근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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