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북자 묵인’으로 선회하는 中 동남아 탈북루트 다시 살아나나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4월 1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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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들리는 北 김정은 체제]
中정부, 집단망명 사실상 허용… 단속 나섰으면 제3국행 불가능
北주민 대량탈북 현실화될수도

중국 저장 성 닝보의 북한 식당에서 근무하다 집단 탈출한 북한 종업원들의 국외 이동을 중국 정부가 사실상 묵인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대북 소식통들은 중국의 탈북자 정책이 ‘사냥’에서 ‘방관’으로 바뀌는 게 아니냐는 관측을 내놨다.

중국의 협조나 방관이 없었다면 집중 감시를 받는 북한 종업원들이 단체로 비행기를 타고 중국을 벗어나는 일은 불가능하다. 이들이 여권을 가지고 합법적으로 출국했다고 중국 당국이 공식적으로 밝혔지만 탈북 과정에서의 중국 태도를 보면 ‘탈북자 사냥’에 가까운 과거의 탈북자 대응 관행에도 변화가 있을 것으로 보인다.

중국 사정에 밝은 한 외교관은 11일 “중국 정부의 협조 없이는 북한 종업원들의 신속한 한국행이 어려웠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 외교관은 “중국 정부는 평소 타국 외교관의 활동이나 북한 사람들의 동선을 세밀하게 파악하고 있기 때문에 중국의 승인이 없다면 제3국행 비행기를 타는 것조차 힘들다”고 설명했다.

2003년 1월 국군포로 출신 탈북자 전모 씨는 유효한 여권을 소지하고 있었으나 저장 성 항저우(杭州) 공항에서 공안에 체포돼 지린 성 투먼의 탈북자 수용소로 보내져 40여 일간 억류됐다. 그는 강제 북송 직전 간신히 한국 땅을 밟았다.

또 다른 당국자는 “중국이 적극 협조했다기보다 막지 않은 것으로 보는 게 맞다”고 말했다. 다만 중국이 이들의 한국행을 암묵적으로 동의했더라도 한국 정부가 북한 종업원들의 집단 귀순 사실을 전격 공개한 것까지 동의했는지는 미지수라며 중국이 난처한 상황에 빠졌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그동안 탈북자들을 적극적으로 색출했던 중국이 탈북자들의 자국 내 이동을 ‘방관’할 경우 중국과 동남아를 거쳐 한국으로 향하는 탈북 루트가 다시 활성화될 것으로 보인다.

우선 압록강과 두만강을 포함해 1334km에 이르는 북-중 국경에서 강을 넘는 탈북자들을 중국이 적극적으로 막지 않으면 대량 탈북이 현실화될 수 있다. 이들이 신분증을 제시하지 않고도 탈 수 있는 교통수단을 통해 이동하는 것을 중국 당국이 막지 않으면 북-중 변경에서 베트남 라오스 미얀마 등 동남아 국경까지 이동하는 일은 그리 어렵지 않다. 다만 시간이 걸릴 뿐이다. 지린 성 투먼에서 광시좡(廣西壯)족 자치구의 변경 도시 팡청강(防城港)까지 자동차 길 거리는 약 3240km다.

그동안 많은 탈북자들이 북-중 국경을 넘은 뒤에도 변경 지대에 머물면서 동남아 국경까지 갈 시도를 못 한 것은 중국 당국의 적극적인 적발이 있었기 때문이다. 옌지 등 변경 도시에서는 사실상 ‘생계형 탈북’이라고 보고 적극적으로 단속하지 않는 것과 대비된다. 변경 지역에서 타지로 이동하는 경우 한국으로 가는 ‘진짜 탈북자’라고 보고 적극적으로 단속한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국제인권단체는 중국이 탈북자를 ‘불법 월경자’로 규정해 범죄자 취급을 하는 정책을 바꿔 ‘정치적 난민’으로 인정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현재 북-중 관계 아래에서는 이 같은 전향적인 태도 변화를 기대하기는 어려운 상황이다.

베이징=구자룡 특파원 bonhong@donga.com /조숭호 기자
#탈북자#묵인#집단망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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