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광장/최진석]이제는 혁명을 말해야 할 때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4월 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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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구없는 정치, 사회에서 비롯… 갈 데까지 간 사회 부패, 국방분야 범죄에도 영향
건강성 유지 집단도 없어 민주화 깃발은 완장에 불과… 민주화 後 시대적 사명은 未定… 전면적 근본적 혁신 시도해야

최진석 서강대 철학과 교수 건명원 원장
최진석 서강대 철학과 교수 건명원 원장
이런 선거가 언제 또 있었던가 싶다. 한국 정치로부터 기대하는 것이 이미 실없어 보일 정도가 되어 버렸지만, 비전을 제시하거나 모범이 될 만한 행동으로 표를 요구하는 최소한의 염치도 사라졌다. 벽 앞에 선 정치다. ‘정치’는 사라지고 철저하게 ‘정치 공학’만 남았다. 이 사람이 저 사람으로 바뀌고, 저 사람이 이 사람으로 바뀌고만 있을 뿐, 의미 있는 내용은 없다. 이리저리 옮겨 다니는 정치인을 ‘철새’라고 비난하던 때는 그래도 정치가 최소한이나마 정치로 남아 있었던 때였나 보다. ‘그들만의 리그’로 전락한 지 오래다. 출구가 보이지 않는다.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정치는 어쨌거나 꽃이다. 우리의 삶은 정치적 행위로 표현되고, 또 정치라는 우산 아래서 결정된다. 정치를 벗어나는 사회적 행위는 없다. 사회적 행위가 곧 정치 행위다. 그래서 정치는 그 사회의 품격과 수준을 그대로 드러낸다. 우리 정치 수준은 그대로 우리 사회 수준이다. 정치가 돌아가는 형국은 그대로 우리 사회가 돌아가는 형국이다. 출구 없는 정치는 출구 없는 사회에서 태어났다.

정치가 기능주의에 빠져 있다면 기업이나 교육을 포함해서 사회 전체가 기능주의에 빠져 있을 것이다. 국방도 예외가 아니다. 학생들은 대학에 들어가는 일이 해야 할 일의 전부가 된 지 이미 오래다. 꿈을 꾸지 않는다. 고등학교는 대학 진학률의 노예가 되었고, 대학은 취업률의 노예가 되었다. 방송이 시청률의 노예가 되어 있는 것과 유사하다. 이런 상황이라면 정해진 것을 넘어서서 아직 오지 않은 새로움에 도전하는 일이 어찌 감행되겠는가. 기업이라고 다르지 않다. 선진국과의 경쟁에서 ‘따라 하기’의 한계를 넘지 못하고 있다. 선도력을 갖는 일은 시도조차 안 된다. 국방은 국가의 핵심 기둥이다. 그래서 부패의 기운도 원래는 이곳으로 가장 늦게 도달한다. 국방에 부패가 만연한다면 그 사회의 부패 정도는 이미 갈 데까지 간 것으로 봐야 한다. 장성들이 부하 장병들에게 입힐 방탄복을 저질로 만들게 하고 자기 배를 채우는 일까지 해대는데, 더 이상 무슨 말이 필요하겠는가. 기업이나 교육이나 국방까지도 모두 벽 앞에 서 있다.

벽 앞에 서 있는 사회, 지금 우리의 현주소다. 보고서들에 의하면, 우리 사회는 계층 이동성이 현저히 떨어졌다. 이는 사회가 앞을 향해 나아가지 못하고 있음을 뜻한다. 이동하지 않는 사회는 굳어지고, 틀에 갇히고, 기능주의에 빠지며, 꿈을 상실한다. 어떤 사회든지 아무리 부패하고, 아무리 굳어 있어도 정치나, 기업이나, 교육이나, 검찰이나, 문화나, 법률이나, 종교나 할 것 없이 어느 한 부분이라도 건강성을 유지하고 있다면, 그것을 최소한의 자원으로 삼아 사회 전체의 건강성으로 확장할 수 있다. 그러나 우리 사회는 이런 역할을 할 정도로 건강성을 유지하는 의미 있는 집단이 없다. 한마디로 위기가 전면적이고 전체적이다. 이것이 정치의 한계로 드러나고 있을 뿐이다.

사회가 전면적인 한계에 갇혀 있다면, 화장을 고치는 정도가 아니라 근본적이고도 전면적인 혁신을 시도해야만 한다. 바로 혁명(革命)이다. 즉, 명(命)을 바꿔야 한다. 명(命)은 시대 의식이고, 비전이고, 어젠다이고, 틀이고, 방향이다. 우리나라가 급속히 발전할 수 있었던 것은 그때그때마다 시대의 요구에 화답하며 딱 맞는 ‘명’을 설정하고, 역량을 그 ‘명’에 집중시켜 완수하였기 때문이다. 광복 직후에는 식민의 운명에서 벗어나 건국이라는 ‘명’을 완수하였다. 그 후에는 바로 산업화라는 새로운 ‘명’을 설정하고 결국 완수했다. 산업화 이후에는 또 산업화의 벽에 갇히지 않고 바로 뛰어넘어 민주화의 ‘명’을 완수하였다. 문제는 그 다음의 ‘명’이다. 지금 우리는 민주화 다음에 완수해야 할 새로운 ‘명’을 설정하는 데 성공하지 못하고 벽 앞에 서 있는 형국이다. 새로운 ‘명’으로 무장하여 벽을 넘지 못하면, 과거의 혁명 깃발은 모두 완장으로 바뀌고, 결국 이전투구에 빠지게 된다. 건국도 산업화도 민주화도 이제는 모두 완장이 되었다. 완장들은 자기들이 해왔던 말만 계속 해대며 핏대를 세운다. 시대의 소리를 듣지 않고, 자신이 속한 집단의 논리만 계속 늘어놓는다. 거의 모든 혁명가들이 혁명가로 남지 못하고 반항아로 전락하는 이유이다. 그래서 정치에 출구가 보이지 않는 지금은 바로 혁명을 꿈꿀 때이다.
 
최진석 서강대 철학과 교수 건명원 원장
#정치 공학#철새#그들만의 리그#혁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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