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순덕 칼럼]윤상현과 유승민, 두 남자의 권력의지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4월 3일 22시 10분


코멘트

가난한 군인의 秀才아들 윤상현 ‘대통령의 남자’로 존재감 확인
“원내대표, 당대표 하겠다” 외쳐

눈치 안 보는 ‘금수저’ 유승민, 대통령과는 안 맞을 수밖에

나라-군주에 대한 충성 다른 것…의원세비, 국민혈세에서 나온다

김순덕 논설실장
김순덕 논설실장
억울하기로 치면 윤상현 의원만 한 사람도 없을 것이다. 3월 8일 채널A에서 “김무성 죽여버려… 공천에서 떨어뜨려”라는 목소리 녹음파일이 공개되기 전까지, 그의 앞길은 개선문광장이었다. 박근혜 대통령이 2017년 대선에서 TK(대구경북) 패권주의와 노쇠한 정치인에 환멸을 느낀 지지층을 잡기 위해 ‘세대교체 카드’로 윤상현을 밀 수도 있다고 김진명 소설 ‘싸드’에 나올 정도다.

나는 그가 이번 총선에선 백의종군하기 바랐다. 국회 연설을 끝내고 퇴장하는 대통령 뒤에서 “대통령님, 저 여기 있어요” 하고 불러 자신이 총애받고 있음을 만천하에 알리는 짓을 포함해, 지금까지 얼마나 오만했는지 깨닫고 묵묵히 총선 뒷바라지를 한다면 감동을 줄 수 있다고 생각했다. 선거 뒤 과거 대선주자들처럼 외유를 가든가, 더 공부를 하든가, 하다못해 ‘고난의 코스프레’라도 하면 좋은 정치인이 될 수도 있겠다 싶었다.

윤상현이 무소속으로 인천 남을에서 빨간 목폴라에 흰 점퍼를 입고 공식 선거운동을 시작한 첫날 “당선되면 바로 새누리당에 입당해서 원내대표, 당 대표로도 반드시 저의 지역에 큰 도움이 되도록 하겠다”고 한 유세를 보는 순간, 나는 진심으로 대통령을 걱정했다. 대통령은 대체 왜, 저렇게 권력욕과 복수심을 감추지도 않는 남자를 이뻐하느냐 말이다.

그의 ‘명민한 두뇌와 날카로운 언변’(김진명의 표현), 초인적인 부지런함과 친화력, 그리고 이 모든 것을 압도하는 충성심과 야망을 모르지 않는다. 나는 스탕달의 ‘적과 흑’ 주인공 같은 외모와 머리, 그리고 가정환경이 윤상현 권력의지의 원천이라고 본다.

윤상현은 “가난한 군인 아버지 아래 초등학교를 세 곳이나 옮겨 다녀야 했던 유목민 같은 생활이 어떤 환경에서도 살아남을 수 있는 강한 적응력을 키워줬다”고 한 인터뷰에서 말했다. 학생한테는 성적이 계급이다. 중학교 때부터 ‘무엇이든 잘해야 하고 완벽해야 한다는 강박관념과의 싸움’(자서전 ‘희망으로 가는 푸른 새벽길’)을 했던 그로서는 공부가 제일 쉬웠을 것이다.

하지만 ‘서울대에서 계약직 교수를 했던 시절, 많은 문제를 접하면서 권력이 있어야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고 썼듯이 대학에선 능력만으론 안 된다. 정계로 갔고 누구보다 열심히 뛰었다. 심리학자 황상민 전 연세대 교수에 따르면 윤상현은 주어진 상황에 맞추면서 남에게 인정받는 것을 통해 ‘존재감’을 확인하는 리얼리스트 성향이다. 시키는 일만 완벽하게 하되 오버하지 않기를 바라는 박 대통령한테는 최상의 ‘머슴’인 셈이다.

유승민 의원(무소속·대구 동을)에 대해 황상민은 옳은 일이라고 판단하면 윗사람과 부딪치더라도 과감히 하는 이상주의자 성향이라고 했다. 한국개발연구원(KDI) 재직 때인 1998년 외환위기 시대의 재벌 빅딜에 대해 “정부의 강압적 수단을 배제하고 구조조정을 향한 재벌 간의 경쟁을 유도할 필요가 있다”고 눈치 없게 계속 비판해 자의 반 타의 반 당시 한나라당의 여의도연구소로 옮겼을 정도다. 여당 의원이면 무조건 청와대를 따라야 한다고 믿는 대통령과는 당연히 잘 안 맞을 수밖에 없다.

박 대통령은 유승민이 ‘자기 정치’를 한다고 비판했다. 그에게 권력 의지가 있다면 그렇게 ‘맞짱’을 피할 리 없다. 아쉬운 것 없는 ‘금수저’ 출신이어서 단지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말을 할 뿐이라고 본다. 그런데 작년 원내대표 연설이 당 정체성과 안 맞는다는 것뿐만이 아니라 2012년 당명 개정에 반대한 것, 2014년 ‘한국 외교가 중국에 경도됐다는 말이 있다’는 외교문서를 놓고 “청와대 얼라가 만들었나” 발언을 한 것까지 공천 학살 죄목으로 꼽히는 걸 보니 모골이 송연해진다.

기원전 150년 한나라 때도 나라와 군주를 구별하는 것이 옳으나 군주에겐 미움을 받았다고 했다. 박근혜 정부의 성공을 외치는 윤상현의 충성심은 구별이 없다. 그럼 유승민은 역신(逆臣)인가. 지금이 군주시대란 말인가.

공천 학살을 거치면서 유승민에게 권력 의지가 솟아났는지는 알 수 없다. 대구 류성걸 권은희 무소속 후보 지원 유세에서 “당에 돌아가 대통령 주변 간신 같은 사람들을 다 물리치겠다”고는 했지만 윤상현이 먼저 돌아가 유승민을 절대 안 받아 줄 공산이 크다. 그리고 새누리당은 군주에게 충성하는 국회의원 100% 정당이 될 것이다.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안 나올 수도 있다고 치자. 하지만 당신들의 세비가 국민 혈세에서 나온다는 건 알아야 한다.
김순덕 논설실장 yuri@donga.com
#윤상현#유승민#박근혜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