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막장 공천이라고 선거관리委까지 막장으로 치닫나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4월 2일 00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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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팅 자리에서 젊은 여성이 상대에게 묻는다. “오빠 혹시 그거 해 봤어요?”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최근 4·13총선 투표 독려를 위해 만든 동영상의 대화 일부다. 성관계를 연상시킨다는 비난이 들끓자 홈페이지에서 삭제했지만 선관위가 왜 이런 동영상을 제작했는지 납득할 수 없다.

선관위가 제1야당인 더불어민주당과 제3야당인 정의당 후보 간의 연대를 두고 ‘야권단일후보’ 표현을 허용한 것도 판단력을 의심하게 만든다. 선관위는 4년 전 제1야당인 민주통합당과 제3야당인 통합진보당 간의 연대 때도 야권단일후보라는 표현을 허용했다고 선례를 들었지만 당시 제2야당인 자유선진당은 보수정당이라 엄밀한 의미에서 야권으로 분류할 수 없다.

반면 지금 제2야당인 국민의당은 불과 몇 달 전 더민주당에서 갈라져 나온 야권 정당이다. 더구나 더민주당은 국민의당과의 연대에 목을 매고 있고, 국민의당이 이를 거부하는 상황이다. 그런데도 선관위가 더민주당-정의당 연대를 ‘야권단일후보’로 표기해도 된다고 한 것은 국민의당에 피해를 줄 수 있는 불공정한 선거 관리다.

어제 인천지법은 인천 남을 국민의당 후보가 정의당 후보를 상대로 ‘야권단일후보’라고 적힌 인쇄물을 사용하지 못하게 해달라고 낸 가처분 신청을 받아들였다. 더민주당-정의당 후보 단일화를 ‘야권단일후보’라고 할 경우 “유권자에게 정의당 후보가 야권의 유일한 후보자인 것으로 오해하게 할 우려가 크다”고 법원은 판단한 것이다. 법원이 그런 명칭 사용에 제동을 걸었다는 것은 선관위의 결정이 얼마나 경솔했는지를 말해준다.

선관위가 공식 투표용지 인쇄 시작일인 4일 이전에 서울 구로갑·을 등 일부 선거구에서 인쇄시설 부족을 이유로 사전 인쇄를 하도록 허용한 것도 불공정 시비를 일으킬 우려가 있다. 일단 인쇄가 돼버리면 4일 이전에 후보 단일화가 성사되더라도 ‘사퇴’ 후보를 표시하지 못한다. 공정한 선거 관리를 해야 할 정부기관이 행정적 편의를 위해 공정성을 무시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정치가, 공천이 막장으로 흐른다고 선거 관리까지 막장으로 치달아서야 되겠는가.
#선관위#투표 독려 동영상 논란#야권단일후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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