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승민 공천 여부는 통치권 문제”… 靑 눈치만 본 공관위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3월 2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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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선 D-20]새누리 내전 후폭풍

새누리당 이한구 공천관리위원장은 4·13총선 후보자 등록을 하루 앞둔 23일까지도 유승민 전 원내대표의 공천 문제를 놓고 김무성 대표와 ‘무한 핑퐁 게임’만 벌였다.

한 공관위원은 “유승민 공천(배제)은 결국 통치권의 문제라 어쩔 수 없었다”는 뜻을 주변에 밝힌 것으로 전해졌다. 한마디로 원칙도 기준도 없는, ‘박근혜 대통령 눈치 보기’ 공천이었음을 공관위가 스스로 시인한 셈이다.

이날 공관위는 오후 7시경 전체회의를 개최했다. 이날은 유 전 원내대표의 공천 여부를 판가름하겠다는 계획이었다. 그러나 막상 회의 중 주호영 의원(3선·대구 수성을)의 가처분 신청 인용 소식이 전해지면서 대책을 마련하기에 급급했다.

회의 직전 김 대표는 유 전 원내대표의 지역구인 대구 동을 공천에 대해 “합당한 결정이 없다면 무공천이 맞다”고 밝혔다. 이 위원장은 코웃음을 쳤다. 그는 “합당한 것을 누가 판단하느냐”며 “무공천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김 대표의 주장을 정면으로 반박했다.

하지만 앞서 이 위원장 스스로 “먼저 결정하도록 기다리고 있다. 그게 서로에게 좋다”고 공공연하게 밝혔던 것 자체가 부적절한 발언이라는 지적이 나왔다. 공천을 결정해야 하는 공관위가 책임을 미루는 것 자체에 문제가 있다는 얘기다. 당 핵심 관계자는 “공관위가 컷오프(공천 배제)하자니 여론의 역풍을 맞을까 봐 그동안 결정을 미뤄 온 것”이라며 “여기에 공관위로선 행여나 유 전 원내대표가 경선에서 이겨 (선거에서) 당선이라도 되면 박 대통령의 심기를 거스를까 봐 ‘셀프 컷오프’를 종용한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친박(친박근혜)계 지도부도 공관위의 ‘유승민 공천 유보’ 사태를 묵인한 책임에서 자유롭지 않아 보인다. 공관위가 유 전 원내대표의 거취 결정을 계속 미뤄 온 상황에서 최고위원 대부분이 나서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인제 최고위원은 앞서 “정치라는 게 시대 상황이 있는데 일일이 다 따질 수 있느냐”고 말하기도 했다. 박 대통령이 불편하게 생각하는 유 전 원내대표에게 사실상 공천을 주기 어렵다는 뜻으로 해석됐다. 공천을 공개적으로 주장한 건 김 대표와 김을동 최고위원 등 두 명뿐이었다.

김 대표가 당헌 당규에 위배됐다고 문제 삼은 지역 4곳에 대해서도 친박계 최고위원은 사실상 공관위의 손을 들어줬다. 이른바 진박(진짜 친박) 후보가 접전 중인 곳이었지만 단수로 추천된 대구 동갑(정종섭 후보), 대구 달성(추경호 후보)이 포함됐기 때문이라는 해석이 나왔다. 친박계 최고위원들은 수적 우위를 바탕으로 줄곧 김 대표에게 표결을 요구했다. 이를 놓고 당내에선 “상향식 공천 원칙보다 ‘친박 패권주의’를 우선순위에 놓고 공천을 실시하겠다는 뜻 아니냐”는 비판이 일었다.

결국 공관위는 지난달 26일 공천 면접을 실시한 뒤 26일 동안 유 전 원내대표의 공천 여부에 대해선 헛바퀴만 돌렸다. 막판엔 공관위가 유 전 원내대표에게 공을 넘겼고, 최고위는 공관위만 바라봤다.

새누리당의 공천 갈등을 지켜보는 민심은 싸늘하게 식어 있다. 수도권 지역의 한 재선 의원은 “이젠 새누리당 지지층조차 지역구에서 만나면 욕부터 한다”며 “유 전 원내대표 공천 문제 하나 때문에 총선 과반이 무너지게 생겼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서울 노원병에 출마한 이준석 전 비상대책위원은 이날 “유 전 원내대표의 공천 문제를 국민 대다수의 관심사로 격상시켜 놓았기 때문에 공관위가 어떤 선택을 하더라도 질책을 받을 수밖에 없다”고 비판했다.

막장 공천의 여파로 탈당 및 무소속 출마가 이어지면서 새누리당은 공천 전보다 10석 가까이 의석이 줄어든 상태에서 선거를 치르게 됐다. ‘일여다야(一與多野)’ 구도에서 총선 승리를 자신했던 새누리당이 스스로 ‘다여다야(多與多野)’ 구도를 만드는 자충수를 둔 셈이라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강경석 기자 coolup@donga.com
#유승민#공천#공관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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