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부패 척결’ 외쳤던 이완구 전 총리의 씁쓸한 유죄 판결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1월 30일 00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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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완종 리스트’에 검은돈을 받은 정치인으로 올랐던 이완구 전 국무총리에게 1심에서 징역 8개월에 집행유예 2년, 추징금 3000만 원이 선고됐다. 어제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2부(부장판사 장준현)는 이 전 총리가 2013년 국회의원 재선거 당시 충남 부여 선거사무실을 찾아온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을 만나 불법 정치자금 3000만 원이 든 쇼핑백을 받은 사실이 인정된다며 “중진 정치인으로서 불법 선거자금을 받아 대의민주주의에 대한 국민의 신뢰를 훼손했다는 점에서 그 죄가 무겁다”고 밝혔다.

이 전 총리는 취임 한 달도 안 된 작년 3월 대국민 담화에서 ‘부패와의 전쟁’을 선포했던 충청 출신 정치인이다. 동향인 성 전 회장이 자원개발 비리로 수사를 받던 작년 4월 이 전 총리 등 유력 정치인들에게 돈을 줬다고 폭로하는 인터뷰를 하고, 정치인 8명의 이름을 쓴 메모를 남긴 채 목숨을 끊는 바람에 이 전 총리는 취임 69일 만에 불명예 퇴진했다.

재임 중 이 전 총리는 “6하 원칙에서 (돈을 받은) 증거가 나오면 목숨이라도 내놓겠다”라고 강변했고, 최후진술 때도 혐의를 부인했으며, 이번 선고 뒤에도 여전히 “결백하다”며 항소할 뜻을 밝혔다. 1심 재판부는 “범행을 부인하며 반성하지 않는 점 등을 고려해 형량을 정했다”고 했다.

이번 사건은 돈을 줬다는 성 전 회장이 자살하기 전에 남긴 인터뷰 내용이 유죄의 증거가 될 수 있는지가 관건이었다. 재판부는 당사자가 사망한 경우 ‘특히 신빙할 수 있는 상태’에서 진술 또는 작성됐다는 점이 증명되면 증거로 삼을 수 있다는 예외 규정을 적용했다. 목숨을 끊으면서 남긴 성 전 회장의 말을 거짓으로 볼 수 없으며 비서진의 문자메시지와 진술 등이 인터뷰 녹취록의 신빙성을 뒷받침한다는 판단이다.

이번 유죄 선고는 같은 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는 홍준표 경남지사의 판결에도 영향을 미칠 듯하다. 검찰은 성 전 회장에게서 금품을 받은 혐의가 있는 김한길 국민의당 의원과 이인제 새누리당 의원에 대해서도 추가 수사를 계속해야 한다.

검은돈을 주고받으면서 깨끗한 척하는 구태 정치와 정경 유착 관행에 이번 판결은 경종을 울렸다. 4·13 총선을 앞둔 예비후보들은 성완종의 교훈을 가슴에 새겨야 한다.
#이완구#성완종 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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