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문재인 대표 사퇴 회견인가 대선 출사표인가

  • 동아일보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어제 기자회견에서 “당 선대위가 안정되는 대로 빠른 시간 안에 당 대표직에서 물러나겠다”고 밝혔다. “선대위가 총선에서 전권을 행사하는 당의 지도부가 될 것”이라며 “백의종군하겠다”는 각오도 덧붙였다. 이르면 21일 당무위원회를 소집해 선대위로 전권을 넘기는 절차를 밟게 된다. 비상대책위도 아니고 당 대표마저 빠진 선대위에 전권을 부여하는 것은 전례를 찾기 힘들다.

만약 문 대표가 40일 전 이런 해법을 내놓거나 ‘혁신 전당대회’를 수용했더라면 안철수 의원의 탈당을 막을 수 있었을지 모른다. 그래서 문 대표의 뒤늦은 사퇴는 대권 경쟁자인 안 의원한테 당권이나 총선 주도권을 넘겨주지 않으려는 고육책이었다는 해석까지 나온다. 문 대표나 친노에게 당권은 곧 대권에 이르는 수단이다. 비노와 호남 의원들의 대거 탈당으로 이제 더민주당은 친노와 운동권의 장악력이 더 커졌다. 공천룰도 거의 확정된 상태다. 김종인 선대위원장에게 당권을 임시로 내준들 문 대표의 대권 가도에 이상이 없을 것이란 판단이 섰을 것이다.

문 대표는 “지금 대한민국의 최대 과제는 불평등 해소”라며 “이번 총선은 불평등한 경제 기득권 세력과 불평등을 타파하려는 미래세력 간의 치열한 한판 승부”라고 규정했다. ‘경제민주화 전도사’인 김 위원장 영입을 합리화하려는 의도가 읽힌다. 문 대표는 비리와 탈당 전력자의 수용으로 혁신의 빛이 바랬는데도 “혁신의 원칙을 지켰고 이뤘다”고 자화자찬했다. 안 의원이 주도하는 국민의당을 겨냥해 “명분 없는 탈당에 대한 국민의 평가는 끝났다”면서 “이번 총선에서 새누리당에 맞서 야권을 이기게 만들고, 내년 대선에서 정권 교체를 이끌 중심세력은 우리 더민주당”이라고 강조했다.

문 대표의 회견에선 제1 야당 대표로서 쟁점 법안 등에 대한 강경한 반대로 국정이 마비되고 야권 분열을 촉발시킨 데 대한 반성과 책임지는 자세가 없다. 곧 물러날 야당 대표의 참회 회견이 아니라, 내년의 대선을 염두에 두고 미리 출사표를 던진 듯한 느낌마저 든다.

김 위원장과 새로운 인물 영입으로 더민주당의 지지율이 회복되고 탈당 러시가 주춤해진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조경태 의원이 어제 탈당하는 등 ‘탈당 복병’은 여전히 잠복 중이다. 국민의당은 일부 경제활성화 법안과 테러방지법안, 북한인권법안의 수용 가능성을 시사했다. 앞으로 김 위원장이 이끌 더민주당이 과거의 강경 노선을 고집할지, 아니면 당의 체질 변화를 꾀할지 눈여겨보겠다.
#문재인#더불어민주당#대선#사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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