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더기 국감증인… 2014년도 甲질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10월 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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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 상임위, 국감 증인채택 구태… 산자위 55명 등 224명 출석 요구
‘기업인 불러놓고 호통’ 재연될듯… “구태 반복땐 국민 폭발” 자성론

“국회 일부 상임위원회가 기업인들을 대거 증인으로 채택했다. 이렇게 매년 퇴행과 구태를 되풀이한다면 아마 국민은 곧 폭발할 것이다.”(김태호 새누리당 최고의원·2일 최고위원회의)

이런 자성의 목소리가 나오지만 이날 현재 국회 11개 상임위원회는 7일부터 20일 동안 진행되는 국정감사를 앞두고 일반 증인 224명을 채택했다. 나머지 5개 상임위에서도 60여 명을 증인으로 신청한 상태다. 또 다른 247명은 참고인으로 채택됐거나 논의가 진행 중이다. 이 중에는 국내에 내로라하는 대기업의 오너와 경영진 중 상당수가 포함돼 있다.

먼저 산업통상자원위원회는 박봉균 SK에너지 대표이사, 김치현 롯데건설 사장, 도성환 홈플러스 대표, 최원병 농협중앙회 회장, 황태현 포스코건설 대표이사, 서충일 STX 사장 등 대기업 최고경영자(CEO)를 비롯해 55명의 일반 증인을 국감장에 부르기로 의결했다. 보건복지위원회가 채택한 43명의 일반 증인 중에는 김용수 롯데제과 사장, 이동수 한국화이자제약 사장 등 기업인들이 포함돼 있다.

국회 각 상임위원회가 이처럼 무더기로 증인을 채택하는 데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국가기관을 상대로 한 국감 현장에 1분 1초가 아까운 기업인들을 마구잡이로 부르는 것은 전형적인 ‘길들이기 식’ 구태(舊態)가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

증인으로 신청된 사람 중에도 ‘거물급’ 기업인이 여러 명 있다. 환경노동위원회는 정몽구 현대자동차그룹 회장과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황창규 KT 회장, 권오준 포스코 회장,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 등 대기업 오너들을 증인으로 부르려 하고 있다.

1년간의 정부 운영을 포함해 국정 전반에 대해 국민을 대신해서 따져 묻는 자리인 국감 현장에 필요한 증인을 부르는 것은 입법부의 정당한 활동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때때로 국감이 증인들을 대상으로 의원들이 합법적인 ‘갑질’을 할 수 있는 무대로 악용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 대체적인 견해다.

이재용 정몽구 줄줄이 증인 신청… 野 한때 “MB 나와라” ▼

올해 국감은 일정이 지난달 30일에야 확정되는 바람에 1, 2일 열린 상임위에서는 일단 국감 초반에 일정이 잡힌 기관 위주로 증인이 논의됐다. 올해는 사상 최대인 672곳의 기관이 국감 대상으로 결정된 데다 국감 후반부에 일정이 잡힌 기관에 대해서는 추가로 증인을 채택할 예정이어서 증인 수가 크게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준비 기간이 턱없이 부족해 ‘부실국감’ ‘호통국감’으로 변질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 이명박 전 대통령까지 증인으로 신청

일부 증인을 둘러싼 논란도 크다. 국토교통위원회 소속 야당 의원들은 4대강 사업과 관련해 이명박 전 대통령을 증인으로 신청했지만 여당이 거부해 무산됐다.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에서는 이인수 수원대 총장을 증인으로 신청할지를 놓고 여야가 갈등을 벌였다. 새누리당은 이 총장이 재판을 받고 있다는 이유로 증인 채택을 거부했지만 야권에서는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의 딸이 수원대에 채용되는 과정에 의혹이 제기되는 상황이어서 증인 채택을 막았다’는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국방위원회에서는 지난 대선 당시 국군 사이버사령부의 정치 댓글 논란과 관련해 김관진 대통령국가안보실장과 사이버사령관 출신인 연제욱 전 대통령국방비서관의 증인 출석 여부를 놓고 여야가 이견을 보이고 있다.

새정치민주연합 김우남 의원이 위원장을 맡고 있는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에서는 김 위원장의 요청으로 예산을 담당하는 방문규 기획재정부 2차관을 일반 증인으로 채택한 것을 놓고 뒷말이 많다. 어업예산 관련 질의 때문이라고 설명하고 있지만 김 위원장의 지역구 예산 신청이 받아들여지지 않은 것에 대한 ‘징벌성 호출’이란 논란이 일고 있다. 김 위원장은 조건이 불리한 지역에 지급하는 수산직불금을 제주도 주민과 어민에게 적용해 달라고 요구했고 기재부가 난색을 표하면서 갈등을 빚기도 했다.

○ 1분도 채 안 되는 답변 위해 하루 종일 대기

국감은 의원들이 기업인들에게 이른바 ‘갑질’을 할 수 있는 무대다. 지난해 산업통상자원위원회 국감장에서는 대형 유통업체의 골목상권 침해 논란과 관련해 허인철 이마트 사장이 답변을 회피하자 의원들이 반발하며 즉석에서 정용진 신세계그룹 부회장을 증인으로 채택하기도 했다.

의원들은 증인으로 출석한 기업인들에게 질문 대신 호통만 치고, 기업인들은 1분도 채 안 되는 시간에 답변을 하거나 아예 질문조차 받지 않은 채 돌아간 적이 적지 않았다.

심지어 엉뚱한 사람을 출석시키기도 했다. 지난해 정무위원회 국감에서 임준성 한성인베스트먼트 대표는 수입차 업계의 담합에 관한 질문을 받자 “우리는 자동차 사업과 전혀 관련이 없다”는 답변만 하고 떠나는 웃지 못할 일도 벌어졌다. 이렇다 보니 기업인들은 국감 출석을 꺼리고, 각 기업의 대관 업무 담당자들은 오너나 경영진이 국감장에 불려가는 것을 막기 위해 사활을 걸고 있다.

장택동will71@donga.com·강경석·손영일 기자
#국회#국정감사#국회 상임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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