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론 조사]靑 “인사 물의 죄송” 17초 대독 성명

민주 “진정성 보이지 않는 나쁜 사과”

박근혜 정부 출범과 동시에 야기된 ‘인사 참사’와 관련해 허태열 대통령비서실장이 공식 사과했다. 하지만 청와대 대변인을 통한 ‘대독(代讀) 사과’였던 데다 인사시스템 보완을 위한 별다른 설명도 없어 ‘사과의 진정성’을 두고 또 다른 논란이 일고 있다.

허 비서실장은 30일 “새 정부 인사와 관련해 국민 여러분께 심려를 끼친 점에 대해서 인사위원장으로서 매우 송구스럽게 생각한다. 앞으로 인사 검증 체계를 강화해 만전을 기하겠다”고 밝혔다. 허 비서실장의 공식 사과는 현 정부 6번째 인사 사고로 기록된 한만수 전 공정거래위원장이 사퇴한 지 닷새 만에 나왔다.

허 비서실장의 사과문을 대독한 김행 청와대 대변인은 “제도보다는 운용에 문제가 있다고 판단된다”며 “제도뿐 아니라 운용의 묘를 살려 어떻게 하면 철저하게 개인의 도덕성과 공직자로서의 자세 등을 파악할 수 있는지 토론하고 개선책을 마련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야당뿐 아니라 여당 일각에서도 제기된 곽상도 대통령민정수석비서관의 문책론과 관련해서는 “일단 비서실장의 오늘 말씀(사과)으로 갈음하는 것으로 했다”며 인사검증 책임자에 대한 문책은 없다고 선을 그었다. ‘인사 참사’에 대해 ‘사과나 문책은 없다’고 강조해 온 청와대가 갑자기 허 비서실장의 사과로 급선회한 것은 새 정부 출범 후 첫 고위 당정청 워크숍을 앞두고 새누리당 내 기류가 심상치 않다고 봤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허 비서실장은 당정청 워크숍에서도 여당의 질책이 이어지자 “제대로 대통령을 보좌하는지 자문할 때 여러 미흡함이 많다”며 “따가운 질책, 공포스러운 질책을 듣고 통렬히 반성한다. 책임을 통감하며 정말 죄송하고 잘하겠다”고 거듭 사과했다. 또 “당정청이 모두 일체가 돼 성공한 정부, 성공한 대통령이 될 수 있게 도와주실 것을 간곡하게 부탁드린다”며 자세를 낮췄다. 곽 민정수석도 이 자리에서 “다시는 인사상 실수가 일어나지 않도록 인사시스템을 정비하고 인력을 보강하겠다”며 “다시 한 번 죄송하다”고 사과한 것으로 알려졌다. 허 비서실장의 대국민 사과로 워크숍에서는 인사 실패에 대한 새누리당의 질책 수위가 낮아졌다고 한 참석자는 전했다.

하지만 허 비서실장의 사과문 발표 당시 이남기 대통령홍보수석비서관은 기자들에게 “31일 인사시스템에 대한 개선책을 추가로 내놓겠다”고 밝혔으나 청와대는 이날 아무런 발표도 하지 않아 ‘면피성 사과였다’는 지적이 나온다. 민주통합당도 “청와대의 사과는 진정성이 없다”고 비판했다. 윤관석 원내대변인은 “주말에 대통령도 아닌 비서실장이, 그것도 직접 하지도 않고 대변인을 통해 대신 읽게 했다”며 “사과문이 고작 두 문장에, 시간도 17초짜리다. 진정성이 보이지 않는, 마지못해 하는 요식행위가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든다”고 꼬집었다.

민주당 박지원 전 원내대표는 30일 자신의 트위터에 올린 글에서 “인사 참사에 대한 비서실장의 대국민사과, 대변인 대독 발표는 국민을 졸(卒)로 보는 나쁜 사과”라며 “대통령의 직접 사과와 인사라인의 문책·해임이 국민의 마음을 달래고 41%의 박 대통령 지지도를 만회할 수 있는 길”이라고 지적했다.

이재명·이남희 기자 egij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