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피소 물품 점검 한미 연합군사연습인 ‘키리졸브’가 시작된 11일 오후 인천 옹진군 연평도 대피소에서 연평면사무소 직원이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대피소 물품을 점검하고 있다. 이날 북한은 키리졸브 한미 연합군사연습에 맞춰 정전협정 백지화 입장을 재확인하고 남북 판문점 연락사무소 직통전화를 차단했다. 연평도=원대연 기자 yeon72@donga.com
“겉으로는 평화로워 보이죠. 하지만 마음속으로는 2010년 11월 북한의 포격도발 같은 악몽이 다시 일어나지 않을까 걱정하는 주민들이 많아요.”
한미 연합군사연습인 ‘키리졸브’를 시작한 첫날인 11일 인천 옹진군 연평도의 바닷바람은 여전히 차가웠다. 이날 기자가 찾은 연평도 안은 인적이 끊긴 채 적막감만 감돌았다. 주민들은 예전과 다름없이 일상에 임하고 있었지만 북한의 도발을 염려하며 긴장하는 모습이 역력했다. 자영업으로 생계를 유지하는 일부 주민은 가게 문을 닫고 섬을 떠나기도 했다.
기자는 이날 오후 3시 반경 북한 황해도를 한눈에 조망할 수 있는 연평도 망향(望鄕)공원 전망대에 올랐다. 전망대에서 3km 떨어진 북한의 석도와 갑도(5km), 장재도(7km)가 차례로 눈에 들어왔다.
전망대의 망원경을 통해 북쪽을 보자 산등성이에 ‘위대한 수령 김일성 동지 혁명사상 만세’라는 입간판이 보였다. 망원경을 간판 밑쪽으로 돌리자, 해안포 동굴 진지가 모습을 드러냈다. 북한 해안포 동굴진지 3개의 문은 언제라도 포격이 가능하도록 활짝 열려 있었다. 회백색 언덕 위의 군 초소에는 북한군으로 보이는 병사들이 초소 주변을 거닐며 연평도 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남북 대치의 긴장감은 바다에서도 그대로 나타났다. 북방한계선(NNL)을 넘나들면서 떼를 지어 다니던 중국 어선들이 2월 중순 이후 종적을 감췄다. 산불 단속반원인 장정남 씨(72)는 “산불 감시 때문에 전망대를 하루 서너 차례 오르는데, 지난해 11월에는 중국 어선들이 하루 수백 척씩 떼를 지어 다니는 것을 봤고 올 1월에도 자주 눈에 띄었는데 북한 핵실험 이후 모두 사라졌다”고 말했다.
연평도에 주둔하는 해병대와 해경도 긴장의 끈을 놓지 않고 있다. 주요 지휘소와 군부대 진지로 향하는 산, 언덕, 주요 도로에는 군부대에서 설치한 바리케이드가 있었다. 주민들에 따르면 군부대의 대(對)포병 레이더가 11일 오전 펼쳐졌고 전차들도 주정차 공간에서 이동해 진지에 정위치하고 있다는 것.
2010년 11월 북한의 연평도 포격 때 북한군이 쏜 포탄이 머리 위로 날아가는 충격적 경험을 한 강인구 연평어촌계장(53)은 “북한 포격 도발 후 수개월 동안 참담한 고통을 겪은 연평도 주민들은 최근 남북한 대치 상황이 다시 이어지면서 몸과 마음이 민감해져 있다”고 말했다.
긴박한 상황이지만 주민들은 생계를 위해 고기잡이에 나서고 있었다. 이날 9.7t급 어선 13척이 오전 10시 농어 잡이에 나갔다가 돌아왔다. 연평어촌계에 따르면 요즘 한 마리에 10∼12kg인 농어를 하루 평균 10∼20마리씩 잡고 있다. 연평도 당섬부두 등 해안가에서는 4월 재개되는 꽃게 조업을 앞두고 어구를 정리하는 어민들만 몇몇 보였다. 해경은 이날 오전 출어를 앞둔 어민들을 대상으로 비상사태 발생 때 행동지침 요령을 전달하며 만일의 사태에 대비했다.
주민들은 무엇보다 남북 대치 상황이 더 악화돼 어업통제가 이뤄질까 봐 걱정이었다. 특히 다음 달 금어기가 풀리는 꽃게 조업 시즌을 앞두고 걱정이 태산이다. 신승원 연평어민회장(72)은 “다음 달 1일부터 본격적인 꽃게 철이 시작되는데 봄에 잡히는 암꽃게는 알이 꽉 차 있어 가을 꽃게보다 훨씬 비싼 값을 받을 수 있다”며 “봄철을 놓치면 어민들의 소득에 큰 타격이 있다”고 말했다.
북한이 연일 전쟁 위협을 하면서 주말 평균 200∼300여 명에 달하던 관광객의 발길은 완전히 끊겼다. 그 바람에 장사가 안 되고 북한의 도발 우려가 커지자, 일부 음식점 상인은 문을 닫고 섬을 떠나기도 했다.
이날 연평도 통합학교인 연평초중고교에서는 총 136명의 학생이 모두 정상 등교해 수업을 받았고 방과 후에는 서둘러 집으로 돌아갔다. 면사무소 직원들은 11일 관내 11개 대피소를 모두 개방하고 점검하는 등 바쁜 하루를 보냈다. 연평초중고교 인근 대피소에는 주민들이 1주일간 생활할 수 있는 비상식량, 방독면, 담요 등이 쌓여 있었다. 지난해 12월 26일 오후 2시부터 4시 반까지 주민 167명이 참가한 가운데 11개 대피소를 모두 개방해 실제상황과 같은 대피훈련을 실시했다. 김태진 연평면장은 “어르신들은 비상식량과 옷가지를 챙긴 배낭을 하나씩 메고 대피소에 오신다”며 “3년 전 포격 피해를 겪은 충격이 아직도 큰 것 같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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